흔히 임진왜란 하면 가장 손가락질 받는 사람이 조선 통신사 부사로 파견됐던 김성일이다.
선조는 임진왜란을 2년여 앞둔 1590년 3월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요청에 따라 왜에 통신사를 파견했다. 당시 정사는 서인 황윤길이었고 부사는 동인 김성일이었다. 통신사 파견에는 일본의 요청도 있었지만, 도요토미 집권 후 일본 정세를 파악하려는 의도가 컸다.
당파가 달랐던 이 둘은 파견될 때부터 티격태격했다. 이듬해 3월 귀국 보고서는 이를 확인케 해줬다. 정사 황윤길은 "반드시 왜의 침입이 있을 것"이라고 했고, 동인 김성일은 "그런 증상은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했다. 도요토미의 인상에 대해서도 황윤길은 "눈빛이 반짝반짝하여 담과 지략이 있는 사람"이라고 평했고 김성일은 "그의 눈은 쥐와 같아 마땅히 두려워할 위인이 못 된다"고 보고했다. 왜라는 나라와 도요토미라는 인물의 평가를 두고 둘의 판단은 동'서 만큼이나 달랐다.
한 해 뒤인 1592년 4월 일본은 조선을 침략했다. 황윤길의 우려는 현실이 됐고 김성일의 평가는 틀렸다. 김성일의 판단 능력이 그만큼이었는지 아니면 일부러 거짓 보고를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결과적으로 왜가 침략하자 김성일이 모든 죄를 뒤집어썼다.
문제는 애당초 조선이 왜의 침입으로부터 국가와 백성을 방어할 능력을 키우지 않았다는 데 있었지만 이는 묻혔다. 정사의 말을 믿지 않고 부사의 말을 더 믿었던 선조의 잘못도 묻혔다.
도요토미가 조선에 '정명가도'(명나라를 치기 위해 조선의 길을 열어 달라)를 처음 요구한 것은 1588년 10월이었다. 통신사 파견 이전부터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조선은 허송세월했다. 김성일이 설혹 돌아와 황윤길과 같은 입장을 밝혔더라도 왜의 준비에 비해 조선의 준비 기간 1년은 너무 짧았을지 모를 일이다. 김성일을 믿고 설마 했던 선조는 정작 왜가 침입하자 달아나기에 바빴다.
미국의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사드'THAAD) 배치를 두고 국론이 분열되고 있다. 찬'반 주장이 팽팽히 맞선 것이 임진왜란 당시를 연상시킨다.
사드 배치가 불가하다는 쪽은 중국과의 관계와 사드의 실효성을 내세운다. 설마 북한이 남을 향해 핵을 터뜨리겠느냐는 판단에다 북이 동시다발적으로 미사일을 쏘아 올린다면 사드가 어찌 이를 다 격추시키느냐는 주장도 나온다.
반면 사드 한반도 배치를 주장하는 쪽은 우리나라가 구축 중인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AMD)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그뿐만 아니라 KAMD는 2023년 이후에나 완성된다. 현실적 위협이 된 북핵이나 미사일을 방어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선 사드로 보완할 필요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 주장이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미래를 예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분명한 점은 어느 쪽 주장이 옳으냐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북의 핵과 미사일로부터 국민과 국가를 방어할 능력이 있는가이다. 방어 능력이 있다면 사드는 당연히 필요가 없다. 그러나 방어 능력이 없다면 사드뿐만 아니라 무슨 수단이라도 강구해야 한다. '설마'하며 모른 척 할 수는 없다.
최근 이스라엘이 자국민 보호를 위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날아오는 로켓을 아이언 돔으로 속속 잡아내는 것을 우리는 지켜봤다. 그것이 온통 적국으로 둘러싸인 이스라엘의 생존 비결이다. 이스라엘은 날아오는 로켓까지도 잡아내는데 하물며 이것이 핵폭탄이라면 의미가 사뭇 다르다.
북한은 핵을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를 통해 발사하기 위해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그런 미사일 발사대는 1천 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설마 북한이 우리를 향해 미사일이나 핵을 터뜨리겠느냐고 의심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 판단이 옳건 그르건 시비를 걸 이유는 없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도 완벽한 방어체계를 만드는 것은 우리 정부가 해야 할 몫이다. 역사에 '설마'란 없다. '설마'는 그저 시련만 안길 뿐이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