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열 살짜리 시인

"나의 말은 속삭임이지만, 너의 귀먹음은 함성이다/나는 너를 감동시킬 수는 있어도 생각하게 할 수는 없다/너의 정액은 시궁창 속에 있고, 너의 사랑은 개수대(改水臺)에 빠져 있다…현명한 자들은 멍청해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모래성 같은 미덕(美德)은 파도의 파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 도덕적인 아수라장이 됐다."

서사시 형태인 '멍청한'(Thick as a Brick)이라는 시의 첫 구절이다. 이 시가 알려진 것은 영국 록 그룹 제스로 털(Jethro Tull)이 1971년 이 시를 가사로 한 노래를 발표해서다. 시 제목과 같은 제목의 음반에 당시로는 파격적인 40여 분 길이의 한 곡만 실었다. 이렇게 탄생한 이 음반은 지금도 프로그레시브 록 역사에서 중요한 명반 가운데 하나로 대접받는다.

이 음반 표지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실려 있다. 영국 한 소도시의 신문 보도였는데, 이 시는 불과 아홉 살인 초등학교 2학년생 제럴드 보스톡이 지었으며, 수천 명이 경쟁한 문예대회에서 우승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보스톡에게는 실낙원을 지은 존 밀턴에 비유해 '리틀 밀턴'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그런데 수상 열흘 뒤, 심사위원회가 이를 전격적으로 취소했다. 아홉 살짜리가 쓴 시라고 믿기에는 너무 비판적이고 염세적이라는 이유였다.(제럴드 보스톡에 대해서는 의외의 결말이 있다)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열 살짜리 여학생이 썼다는 시집 '솔로 강아지'가 화제다. 지난 3월 30일 출간돼 시의 일부 내용과 잔인한 삽화 때문에 '잔혹 동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와 함께 제럴드 보스톡처럼 어린 아이가 썼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표현이 많다는 지적과 함께 어머니가 시인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러저러한 논란이 됐다. 논란이 커지자 출판사는 시집을 모두 거둬 폐기 처분하겠다고 밝혔다.

이 아이가 '시'(詩)적인 천재인지 아닌지, 그 시를 온전한 혼자의 힘으로 썼는지 아닌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학원 가기를 강요하는 엄마에 대한 감정을 참혹하게 표현해 문제가 된 '학원가기 싫은 날'도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르게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이번 일이 열 살짜리 여학생에게 많은 상처를 주거나 시적 영감을 움츠러들게 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 아이가 어떻게 자라야 한다는 것은 정답이 없고, 세상 사람이 아이의 삶에 관여할 이유도 없다. 세월이 흘러 유명 시인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게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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