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진실한'이라 함은…

당(唐) 고종(高宗)의 황후였던 무측천(武則天)은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이다.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그의 권력 유지 수단은 다양했다. 그중 특이한 게 있다. 바로 '문자의 강제'이다. 그의 이름은 '明+空'(조) 로, 그가 스스로 만들어 붙인 것이다. 하늘(空)에 해(日)와 달(月)이 동시에 떠있어 한없이 밝다는 뜻이다. 이 글자는 무측천 이외에는 아무도 사용할 수 없었다.

무측천은 이 밖에도 여러 개의 글자를 만들었다. 이를 측천문자(則天文字)라고 하는데 모두 몇 개인지는 확실치 않다. 17∼21개까지 다양한 설이 있다. 이는 이전에는 없었던 개념을 나타내는 새로운 글자가 아니라 기존의 문자를 자의적으로 변형한 것이다. 예를 들면 '星'(성)은 '○', '人'(인)은 '一+生'으로, '地'(지)는 '山+水+土'로 바꿨다. ○은 뜻은 천체가 원형이라는 것이고, '一+生'은 삶이 한 번뿐이란 뜻이다. 또 '山+水+土'는 "땅이란 게 별거냐, 산과 강과 흙이 아니냐"는 언니의 말을 따른 것이다.

이러한 무측천의 문자 창조는 권력이 어디까지 지배하고 싶어하는지를 보여준다. 바로 인간의 생각이다. 언어 그리고 문자에는 문화적 유산과 그런 유산을 만든 언중(言衆)의 사고방식이 각인되어 있다. 측천문자는 이를 폐기하고 권력자의 생각을 강요한다. 그 목적은 의미의 독점이다. '國'(국)의 초기 변형태인 '口안에 武', 忠(충)과 같은 의미인 '一+忠'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국은 '口' 안에 자신의 성(姓)인 '武'(무)를 넣었다. 천하가 무측천의 것이란 뜻이다. '一+忠'은 忠 위에 '一'(일)을 덧댄 것으로, 신하는 충성을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치자가 이를 받아들일 때 지배는 '생각의 지배'라는 가장 고차원의 단계에 도달한다.

눈치 빠른 사람은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런 사설을 늘어놓는지 이미 파악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 얘기이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사전적 의미 그대로 '마음에 거짓이 없고 순수한 사람'일까?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이는 친박 핵심에서 '배신의 아이콘'이 된 유승민 의원이 잘 보여준다. 유승민 의원은,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사전적 의미대로 '진짜 진실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왜 그럴까? 상대가 누구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이 정말 거짓이 없고 순수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 의원은 원내대표에서 쫓겨난 것도 모자라 지금은 박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들에 '이지메'까지 당하고 있다. 유 의원의 처지가 이렇게 딱해진 이유는 잘 알려져 있다. 박 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란 발언이 대표적이다. 증세 없는 복지 확대가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현실에서 그런 '묘수'는 없다. 물론 할 수는 있다. 빚을 내면 된다. 그리스가 이렇게 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잘 아는 바다. 국가 경제의 붕괴다. 결국, 유 의원은 '진실한 사람'이 되려다 '진실하지 않은 사람'으로 몰리게 된 것이다.

여기서 박 대통령이 말한 '진실한'의 뜻이 분명히 드러난다. 내가 잘못하고 있어도 그대로 따르면 진실하다는 것이다. 무측천이 '國'을 '口 안에 武'으로, '忠'을 '一+忠'으로 바꾼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의미의 독점이다. 박 대통령의 지지도는 견고하다. 그만큼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호의적이다. 그렇다해도 이것은 아니다. 더 실소가 나오는 것은 총선 출마자들이 이러한 박근혜식(式) '진실한'(眞實漢)이 되려 안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 대통령의 '진실한'은 수명이 얼마나 될까? 측천문자의 운명이 그 대답의 실마리가 될 것 같다. 무측천은 권력을 장악하자 국호를 주(周)로 고치고 15년간 통치했다. 일본의 이름과 인명 표기에 일부가 남아 있고, 1966년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도 사용된 걸로 봐서 무측천의 통치기간 중 측천문자는 널리 사용된 듯하다. 하지만 무측천이 죽고 재상 장간지(張柬之)가 당의 국호를 회복하자 애당초 없었다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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