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구의 한 쪽방에 사는 A(74) 씨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공중목욕탕을 찾는다. A씨의 집에는 온수는커녕 욕실조차 없기 때문이다. 4년 전부터 매달 중구청에서 지원해주는 경로위생수당 7천원이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목욕탕을 자주 찾지 못할 처지다. 중구청의 복지서비스인 경로위생수당이 정부의 유사'중복 복지사업에 포함돼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A씨는 "당장 한 푼이 아쉬운 처지에 쌈짓돈으로 목욕탕에 갈 수는 없다"고 푸념했다.
정부가 지자체의 복지사업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지역사회의 복지 수준이 후퇴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8월 전국 지자체에 '유사'중복 사회보장사업 정비지침'을 통보했다. 과잉 복지를 막고 지속 가능한 복지를 위해 정부 사업과 비슷한 지자체의 복지사업을 자율적으로 폐지'변경하라는 것이다.
대구는 56개 복지사업이 정리 대상이 됐다. 이 가운데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생활안정지원과 장애인가족양육지원사업 등 27개가 대구시 사업이고, 경로위생수당과 긴급생계비지원 등 29개는 8개 구'군 사업이다.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은 227억원으로 저소득층과 장애인, 노인 등 취약계층 65만 명이 복지혜택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일선 복지 현장에서는 정부의 시각과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가 정한 대상 사업이 대부분 정부의 복지서비스와 중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비 대상인 긴급생계비의 경우 정부의 긴급복지서비스와 중복된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중복이 아니라는 것.
이에 따라 대구시와 구'군은 신청자가 없는 주민소득지원 및 생활안전자금 융자 사업 등 9개 사업만 폐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각 구'군의 복지 담당자들은 "정부가 사업명만 보고 비슷한 사업으로 단정한 뒤 정리 대상에 포함시켰다"면서 "정부 복지 서비스의 사각지대를 지자체가 촘촘하게 메우고 있는데 이를 없애라는 건 사회안전망을 더 헐겁게 만들겠다는 뜻"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이번 구조조정을 계기로 지자체의 복지 서비스 축소에 나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전근배 지역복지'지방자치축소반대 대구대책위원회 집행위원은 "정부 지침은 앞으로 지자체가 복지사업을 신설, 확대할 때마다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지침에 강제성이나 페널티는 없다"며 "지방자치법에 따라 정부는 복지사업에 대한 권고안을 제시한 것이고 최종 결정은 지자체의 몫"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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