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 신국철(대구시 수성구 만촌3동) 씨가 보내 온 의견 = 2015년 9월 23일 자 매일신문 기사에서 '(월암서원은) 1868년(고종 5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진 후 2010년 복원되었다'라고 적고 있다. 여러 문헌을 종합 고찰해 보건대, 서원철폐령은 1871년(고종 8년) 3월 20일에 발한 것이 분명하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1871년 이전의 서원 훼철은 부과된 세금을 납부하지 않았거나 민폐가 심대한 등 귀책사유가 서원에 있었다고 사료된다. 만약 월암서원이 1868년 철폐되었다면 '서원 철폐령'을 빼고, 1868년 '서원 철폐'라고 기록해야 한다. (즉, 령(令)자를 빼야 한다.) 1871년 이전에는 흥선대원군이 민폐 문제를 구실로 서원에 대한 조사와 그 존폐 여부의 처리를 묘당에 위임했다. 조선 초기 서원 건립은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의 충절과 덕행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으나, 조선 후기에 와서는 분쟁을 유발하고 정국을 혼란시키는 등 당쟁의 소굴이 되었고 민폐 또한 심했으며, 묵패(墨牌: 서원이 상민을 호출하거나 잡부금을 모금할 때 발송하던 문서)까지 등장하는 등 서원이 사회에 끼친 역기능이 컸다. 그래서 월암서원 철폐령이 내려진 시점은 1868년이 아닌 1871년임이 맞다.
◆ 매일신문 입장 = 9월 23일 자 본지 '신화와 현실을 잇는 금오산' 시리즈 기사는 월암서원이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없어졌다고 적었고, 독자 신국철 씨는 월암서원 철폐는 1871년이라며 '바로잡아 줄 것을' 여러 차례 요청해왔습니다. 그러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두산백과사전에는 분명히 '월암서원이 1868년 흥선대원군의 철폐령으로 없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국철 선생님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기사를 정정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해서, 대신 신 선생님의 주장과 본지 입장을 밝혀드립니다. 기사 한 줄도 귀중히 읽어주신 신 선생님과 애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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