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귤." 곽대현(가명'11) 군이 껍질을 깐 귤을 할머니(67)에게 내밀었다.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대현이는 기어코 할머니의 손에 귤을 쥐여준다. 대현이의 손등에는 붉은 점들이 촘촘히 박혀있다. 주삿바늘을 꽂은 자국들이다. 대현이는 몸속에 쌓인 철분을 빼는 주사를 일주일에 세 번씩 맞고 있다. 수혈 주사도 한 달에 두 번씩 맞는다. 대현이의 손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할머니가 갑자기 눈시울을 붉혔다. 대현이는 익숙한 듯 말없이 휴지를 건넸다. "대현이가 우리 영감보다 더 잘해줘요. 이렇게 착한 아인데. 하늘도 참 무심하네요."
◆대현이가 할 수 없는 일들
"이노무 자슥 뭐가 피곤하노. 나이도 어린아가." 할머니는 자꾸 피곤하다는 대현이의 말을 처음엔 투정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감기 한 번 앓은 적 없던 대현이의 온몸이 불덩이가 됐다. 2013년 6월 21일 밤이었다. 할머니는 날이 밝자마자 대현이를 데리고 부랴부랴 동네병원을 찾았다. 간단한 검사를 마치고 주사를 맞자 열이 내렸다. 지나가는 감기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병원에서 입원 준비를 해서 당장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힐 새도 없이 할머니는 바로 대학병원으로 달려갔다. 검사 결과를 본 의사는 대현이가 피가 잘 만들어지지 않는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피를 못 만든다는 게 뭔말인교. 이제 대현인 우예야 합니까."
TV에서만 보던 일이 할머니 눈앞에서 벌어졌다. 대현이는 골수 이식을 받지 않으면, 평생 남의 피를 몸에 넣어야 한다고 의사는 답했다. 이 때문에 몸에 쌓인 철분을 제거하는 약도 꾸준히 먹어야 한다. 그러다 지난해 봄, 약물 부작용 때문인지 응급실을 3일에 한 번꼴로 드나들었다. 이젠 약 대신 주사를 맞는다. 하지만 대현이의 철분 수치는 여전히 정상치보다 3, 4배가 높다.
아픈 뒤로 대현이는 '하면 안 되는' 일들이 많아졌다.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노는 일도, 가벼운 감기도 대현이에겐 모두 위험하다. 그래서 대현인 체육 시간이면 운동장 한켠에 앉아서 친구들이 노는 것을 지켜만 본다. 좋아하는 과학교실도, 할머니와의 나들이도 대현이는 이제 할 수 없다.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할머니는 대현이의 둘도 없는 단짝이다. 대현이가 태어난 지 11개월이 됐을 무렵, 대현이 아빠의 빚보증 문제로 수억원을 떠안게 되자 엄마는 대현이를 홀로 남겨두고 떠났다. 아빠도 빚쟁이에게 쫓겨 집에 들어오는 날이 거의 없었다. 그때부터 대현이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대현이는 어딜 가든 항상 할머니와 함께했다. 할머니도 대현이만 있으면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9년 전 할아버지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에도 할머니는 대현이가 있어 살아갈 힘을 얻었다. 청소일로 고된 나날을 보냈지만, 대현이의 재롱이면 하루 피로가 싹 풀렸다. "같이 걸으면 대현이가 나를 길 안쪽으로 밀고 자기는 바깥쪽으로 걸어가요. 얼마나 듬직한지 몰라요."
지난해 겨울 학교 숙제로 적어낸 대현이의 꿈은 '환생'이다. 대현이는 '새로운 나'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건강해지면 공부가 제일 하고 싶어요. 할머니랑 예전처럼 여기저기 놀러도 가고 싶고요. 그럴 수 있겠죠?"
할머니는 대현이의 꿈을 꼭 이뤄주고 싶다. 얼마 전 반가운 소식도 접했다. 대현이 아빠와 대현이의 조직이 맞아 골수 이식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철분 수치 조절만 이뤄지면 다음 달에 수술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현재 대현이 집의 수입은 기초생활수급비와 노령연금 등으로 받는 80만원이 전부다. 할머니는 대현이가 아프면서 일을 그만뒀다. 아빠는 아직도 밀린 빚을 갚느라 허덕이고 있다. 할머니는 골수 기증자를 찾기 위해 지난해 전세 보증금 1천만원을 뺐지만 골수 이식 수술비와 치료비를 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현이가 참 밝은 아인데 집에만 있어서 그런지 요즘 들어 부쩍 우울해해요. 다시 대현이가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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