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레이더 전쟁

1942년 2월 야마시타 도모유키 중장이 지휘하는 일본 육군 제14군이 영국군의 저항을 물리치고 싱가포르를 점령했다. 일본군 정보부는 영국군 레이더 기술자의 노트를 노획했는데, '야기 안테나'(Yagi antenna)라는 말이 여러 차례 언급돼 있었다. 정보부 요원들은 무슨 뜻인지 몰라 영국군 기술자에게 물어보니, 야기 히데츠구라는 일본인이 개발한 레이더라고 했다.

일본군 정보부가 깜짝 놀라 조사해보니 1926년 도호쿠(東北)대학의 우타 신타로'야기 히데츠구 교수가 발명한, 획기적인 개념의 레이더였다. 전자기파를 발사하고 수신하는 데 뛰어난 지향성과 예민한 감도를 가진 독보적인 레이더였다. '야기 안테나'는 우리나라에서도 VHF TV수신용 안테나로 광범위하게 사용될 정도로 위대한 발명품이다. 20년 전만 해도 집집마다 옥상, 지붕 등에 몇 개의 금속봉을 나란히 연결한 이 안테나를 달아놓고, TV가 잘 나오지 않으면 이리저리 돌리곤 했던, 추억이 깃든 제품이다.

당시 일본은 자국에서 발명한 기술을 군사력에 활용할 줄 몰랐고, 미국, 영국은 그 원리를 받아들여 레이더 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킨 상태였다. 미 해군은 '야기 안테나'를 군함에 장착함으로써 사격의 정확성을 크게 높여 일본 해군을 연파했다. 그제야 레이더의 효율성을 파악한 일본군은 기술 개발에 나섰지만 이미 전세가 기운 뒤였다.

영국과 독일이 1940년 7월부터 1941년 5월까지 벌인 영국 본토 공방전은 레이더로 인해 승부가 결정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영국군 레이더는 접근해오는 독일 폭격기와 전투기 편대를 몇 백㎞ 밖에서부터 추적하면서 진행 속도, 항로, 규모까지 속속 파악해 독일 공군을 무력화시켰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독일은 레이더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패전국으로 전락했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다. 현재 미군의 최첨단 전투기 앞부분에는 일본이 개발한 고성능 레이더가 장착돼 있다고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현재 한반도에서는 레이더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기세 싸움이 한창이다. 사드(THAAD) 배치와 관련해 미국은 한국에 미사일 외에 600~1천200㎞의 요격 탐지용 고성능 레이더를 설치할 계획이고, 중국은 한반도 인근에 초대형 신형 레이더를 배치한 상태다. 레이더는 전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에서 이래저래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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