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스라엘에서 배운다] ⑥군대, 인생의 터닝 포인트

군대 출신 창업자들 모여 'IT업계 전사' 키운다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 통곡의 벽 광장에서 만난 군인들.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하는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군에서 사회생활에 필요한 노하우를 배우는 것은 물론 내면적 강인함, 애국심 등을 체득한다.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 통곡의 벽 광장에서 만난 군인들.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하는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군에서 사회생활에 필요한 노하우를 배우는 것은 물론 내면적 강인함, 애국심 등을 체득한다.
정보통신부대인 8200 출신 CEO들이 만든 창업지원 비영리재단 8200 EISP 사무실에서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토론하고 있다.
정보통신부대인 8200 출신 CEO들이 만든 창업지원 비영리재단 8200 EISP 사무실에서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토론하고 있다.
8200 EISP 가이 카초비치 이사, 창업자들을 위한 멘토로 활동하고 있는 우디 레더고 씨.
8200 EISP 가이 카초비치 이사, 창업자들을 위한 멘토로 활동하고 있는 우디 레더고 씨.

◇군과 군인을 존중하는 나라

2009년부터 이스라엘을 이끄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그의 형 요나탄은 1976년 엔테베 구출 작전 당시 이스라엘 국민이 대다수였던 인질 100명을 구출하려다 목숨을 잃은 이스라엘 사령관이다. 이스라엘에서는 네타냐후가 총리가 된 것은 그의 능력과 더불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친 그의 형 덕분이라는 평가도 하고 있다.

1)군대, 썩는 곳이 아니라 실력을 기르는 곳

우리나라에서 군 복무는 흔히 '버리는 시간' 혹은 '머리가 썩는 시간'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군에 가서 머리가 굳는 게 아니라 오히려 창업을 할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을 쌓고 나온다. 군 경험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830만 명에 불과한 인구로 2억5천만 명에 이르는 아랍 국가들과 맞서야 하는 이스라엘에서 군 복무는 남녀 모두에게 의무다. 여자는 2년, 남자는 3년 동안 복무한다. 18세가 되면 군대에 가는 게 일반적이다. 2천 년 이상 나라 없이 전 세계를 떠돌았던 유대인이어서 이스라엘에서는 나라를 지키는 군인을 존중하는 의식이 매우 강하다. 단적인 예로 이스라엘에서 의무 복무하는 사병이든 직업 장교든 상관없이 군복을 입고 있고 신분증을 제시하면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군을 존중하는 국민의 인식과 지지에 힘입어 이스라엘군은 사기(士氣)가 높다.

2)군대, 국가 인재양성소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군 제대 후 1~2년 동안 외국에서 배낭여행을 한다. 군과 해외여행을 통해 한층 더 성숙해지고 글로벌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다. 창조와 혁신을 이끌 수 있는 인재가 군에서 키워지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는 군 경험을 아주 중요한 성장 과정이라고 본다. 압박감 속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훈련을 받는데 이 같은 경험은 청년들을 성숙하게 만든다. 이렇기에 이스라엘 군대는 '국가 인재양성소'(national incubator)이기도 하다.

3)군대, 창업 인큐베이터

이스라엘군의 지휘자는 제일 먼저 현장에 진입하고 제일 나중에 현장을 나온다. 지도층의 솔선수범을 군에서 배운다. 군에서 부하들의 표정을 살피고 대책을 내는 등 지도력도 배양한다. 비난은 상관이 감수하고 영광은 부하에게 돌리는 풍토도 이스라엘 군대 특유의 분위기이다.

군에서 직업훈련도 많이 한다. 군에서 창업을 준비하거나 대학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스라엘군은 국가 방위의 역할은 물론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공익적 성격이 강하다. 전역 군인들에게 군의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 이를 민간에 전파함으로써 사회 발전에 일조한다. 군이 각종 컨설팅과 경진대회 등을 통해 창업교육은 물론 인큐베이터 역할까지 한다. 단적인 예로 필캠(Pill Cam)이라는 의료기기가 있다. 알약처럼 생긴 장치 안에 초소형 카메라가 들어 있다. 약을 먹듯이 필캠을 삼키면 장기 내부를 촬영할 수 있다. 군대 동기인 의사와 미사일 전문가의 합작품이다. 카메라는 원래 미사일 탄두에 장착하기 위해 개발한 것을 소형화했고, 의료용으로 개발해 상업화했다.

◇8200 EISP, 군대로 맺어진 창업 요람

이스라엘 경제수도인 텔아비브. 그 중심가에 있는 8200 EISP 사무실을 찾았다. EISP는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익히 들어봤을 명칭이다. EISP는 Entrepreneurship & Innovation Support Program의 약자로 '기업가 정신 및 혁신 지원 프로그램'으로 풀이할 수 있다.

EISP를 알려면 이스라엘 최고 정보부대 8200(Unit 8200)부터 살펴봐야 한다. 8200은 이스라엘 국가방위군 최정예 엘리트들로 구성된 정보통신부대다. 이 부대 출신의 성공한 벤처 CEO들이 지난 2011년 만든 창업지원 비영리재단이 8200 EISP다. 군대 출신자들이 창업을 지원하는 시스템으로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

◆유망 기업 잇따라 배출

8200 EISP 운영을 맡고 있는 가이 카초비치(29) 이사는 "8200은 사이버 보안정보기관으로 미국의 국가안보국(NSA:National Security Agency)과 비슷하다"며 "NSA와 달리 젊은이들로 구성된 것이 8200의 특징"이라고 했다. 세계적 보안기업 체크포인트를 세운 길 슈웨드 등 8200 출신 가운데 굴지의 기업을 일군 창업자들이 많다. 카초비치 이사 역시 8200 출신이다.

EISP는 'IT업계 전사(warrior)'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카초비치 이사는 "아이디어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무엇보다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매년 신청 창업자 수를 300명으로 제한하고 이 가운데 최종적으로 20명만을 엄선한다. 8200 EISP는 개발 초기 단계의 창업자에 특화되어 있다. 참가자들을 인터넷, 모바일, 생명과학, 에너지 등 분야와 상관없이 섞어 4명씩 조를 편성한다. EISP 프로그램은 첫 3일간은 하루 15시간씩, 이후 5개월간 매주 하루 12시간씩 진행된다. 사무실에서 시작된 조원들 간의 토론은 식당, 술집까지 밤새 격렬하게 이어진다. 이 같은 다양한 집단 토론이 EISP의 핵심으로, 전체 프로그램의 30%가 창조적 집단사고(brainstorming)에 할애되고 있다.

교육 기간 중 성공한 CEO 20명이 멘토로 자원해 일대일로 지도도 한다. 정보통신 분야에서 20년 동안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멘토로 활동하고 있는 우디 레더고(42) 씨는 "창업가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알려주고 있다"며 "제 노하우를 통해 창업가들이 실수를 적게 하도록 뒷받침하고 있다"고 했다.

프로그램 졸업식은 '데모 데이'로 불릴 정도로 치열하다.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에인절투자자, 인큐베이터, 벤처 투자자 등 400명의 투자자 앞에서 성과를 발표한다. 20개 팀이 5분씩 발표하는 데모 데이를 통해 우열이 가려지는 것. EISP 교육 과정은 혹독하리만큼 탄탄해 벤처 기업인들에게 성공 보증수표가 되고 있다. 프로그램 졸업자가 창업한 벤처 기업 성공률은 82%. 95개 기업이 지난 5년간 2억5천만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1억달러 성공 신화의 주역인 모바일 해킹을 막는 보안업체 '래쿤 시큐리티'도 그중 하나다.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2012년 EISP에 뽑혔고, 프로그램 이수 후 창업했다. 그리고 3년 뒤인 2015년 인터넷 보안회사 체크포인트에 1억달러를 받고 회사를 넘겼다. 이 밖에 EISP를 통해 창업해 수백만달러에서 수천만달러씩을 받고 다른 기업에 인수된 회사들이 적지 않다.

◆군 경험, 성공의 초석

군 경험이 창업 등 사회생활에 어떤 도움이 될까? 카초비치 이사는 군 경험이 삶에 도움이 된 3가지를 들었다. 첫 번째는 뛰어난 이들을 많이 사귈 수 있는 네트워킹, 두 번째는 반드시 이뤄내는 능력과 힘을 키울 수 있는 것, 세 번째는 8200부대에서 작은 팀을 이뤄 프로젝트를 하면서 앞선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것 등을 꼽았다. 포병 장교로 근무한 레더고 씨 역시 군대가 사회생활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털어놨다. "저는 18세 때부터 4년 동안 장교로 근무하면서 40명가량을 제 밑에 두고 있었어요. 부하들을 통솔하면서 책임감을 키웠습니다. 군에서 기능적인 부분도 배웠지만 내면의 강인함을 얻은 것도 삶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EISP 프로그램 참가비는 100달러로 정해놓았지만, 내지 않아도 그만이다. 예산은 8200부대 출신 CEO들과 프로그램 졸업생들이 전액 기부하고 있다. 이스라엘 창업 최전선에서 활약 중인 두 사람에게 창업 성공 비결을 물었다. 무엇보다 창업자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긍정적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산을 만나면 올라가고 올라가지 못하면 산을 깎아버린다는 도전 정신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다음으로는 열심히 일하는 것을 꼽았다. "먹고 자는 것도 잊고, 가족도 잊고 열심히 일을 해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창업에 나서는 것도 이처럼 '일에 미치는' 분위기가 밑바탕이 된 덕분이지요." 마지막으로는 작은 시장에서는 작은 이익을 얻는 것에 그치기 때문에 큰 시장에 도전할 것, 자신의 아이템과 경쟁이 되는 회사를 조사하고 없다면 왜 없는지를 살펴볼 것, 최적의 사람으로 멤버를 짤 것 등을 성공 비결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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