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교 시절을 안동에서 보냈다. 1학년 때였다.
오래된 기억 속이지만 어머니를 따라 산동네를 숨차게 올라갔던 일이 또렷이 생각난다. 어머니는 우리 반에 부모님 없이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친구의 딱한 사정을 듣게 되었다. 당시 우리 집도 넉넉한 살림이 아니라 셋방살이를 했고, 나는 옷에 구멍이 나면 어머니가 꽃무늬 천으로 덧대어 기워주신 옷을 입고 다녔다. 어린 나이에 오르기엔 가파른 산길을 쌀가마니를 진 아저씨가 앞장서고, 나는 공책과 연필을 싼 보따리를 들고 어머니와 함께 올라갔다.
산 중턱쯤에 초라한 친구의 집이 있었다. 할머니는 안 계셨고, 친구는 우리를 보자 부끄러워서 숨어 버렸다. 어머니와 나는 할머니를 기다리다가 물건을 마루에 두고 발길을 돌렸다.
미국에 와서 나도 우리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할머니와 살고 있는 한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는 성품은 착했지만 어둡고 긴장된 표정으로 사람들을 피하곤 했다. 어느 날 그 아이의 할머니를 통해 부모가 이혼하면서 아이가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엄마 될 사람으로부터 심한 학대를 받았는데, 그녀는 아이에게 밥도 제대로 주지 않고 아이 머리를 감겨 주다가 물통에 밀어 넣어서 아이가 질식할 지경에 이르게 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아이는 모든 여자를 보면 무서워하고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아이 아빠는 그 여자와 헤어졌고, 지금까지 아이는 할머니와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사연을 듣자 가슴이 아려왔다. 그 후로 나는 그 아이를 만나면 안부도 묻고 작은 것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때부터 매년 그 아이의 생일이 되면 조그만 선물을 챙겨서 그 집을 찾아간다. 아이는 부끄러워 인사만 하고 방으로 들어가곤 하지만, 할머니는 모아둔 일 년치 이야기를 풀어놓으시며 반가워하신다. 그리고 어떤 생일에는 그 아이의 친구이기도 한 우리 아이와 함께 갔다. 친구에게 줄 생일 선물을 들고 신이 나서 앞장서는 딸을 보며, 이 추억이 우리 아이에게 따뜻한 체험학습이 되길 바랐다.
몇 년 전 어머니가 미국에 오셨을 때 이런저런 옛날 이야기를 하다가 산동네 친구 이야기를 꺼내자 어머니께서는 "그때 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니?"라며 놀라셨다. 나는 "아마 그날 산길 오른다고 너무 고생해서 수십 년이 지났지만 잘 기억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추억을 더듬으시며 그 이야기의 후편을 들려주셨다. 산동네 친구 집을 방문한 며칠 후 어머니가 외출했다가 집에 와 보니, 대문 앞에 백발의 할머니가 두 손을 크게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합장을 하고 계셨다는 것이다. 당황한 어머니가 "누구세요?"라고 묻자, 할머니는 며칠 전 쌀과 선물을 받은 친구 할머니라고 하셨다. 너무 고마운데 보답할 길이 없으니 복이라도 빌어 주려고 힘들게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그 후속편을 듣고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내 인생에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가족의 소중함이 소록소록 피어나는 오월이다. 가족과 멋진 추억을 만들기 위해 여러 일들을 계획해 보는 계절이기도 하다. 가족 여행을 가는 것도 좋고, 취미 활동을 함께하는 것도 좋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모든 시간은 즐거운 추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자녀들에게 인생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느끼게 할 수 있는 추억 한 장을 첨부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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