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 영국 총리가 1945년 7월 총선에서 패해 실각할 줄은 처칠 자신도, 영국 국민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총선 결과는 클레멘트 애틀리의 노동당 393석, 처칠의 보수당 213석으로, 보수당의 굴욕적 참패였다. 이런 결과에 대해 보수당 지지자들은 '배은망덕'이라며 경악했고, 노동당 지지자들조차도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라며 의아해했다.
영국의 유력 신문 '가디언'의 전신인 '맨체스터 가디언'은 당시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한다. "좌파의 천둥이 번개로 바뀌었다. 오늘 유일하게 정지 동작으로 볼만한 장면이 있다면, 사람들이 처음 결과를 들었을 때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일 것이다." 외국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황당하다는 것이었다. 이는 미국의 반응에서 특히 잘 드러났다. 맨체스터 가디언에 따르면 "미국이 이제 뉴딜주의자들을 제거하고 중도로 우향우하는 상황에서 영국이 사회주의로 돌아가는 것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처칠의 패배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그것을 감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영국 국민, 특히 중하층민은 영국이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전통적인 영국'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전통적인 영국이란 출신 계급에 따라 사회적 지위를 포함한 인생의 거의 모든 것이 결정되는 계급 사회란 뜻이다. 당시 영국 인구의 1%가 전체 부의 50%를 자치하고, 군 장교의 1%만이 노동계급 출신이었음은 영국이 얼마나 완고한 계급 질서하에 있었는지 잘 말해준다.
처칠과 보수당은 영국인들의 이런 변화에 둔감했다. 전쟁 후 영국이 지향해야 할 새로운 질서의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이에 대한 실망감이 노동당 지지로 연결된 것이다. 당시 그리스 주둔 영국군과 같이 있었던 미국 문예비평가 에드먼드 윌슨의 관찰은 이를 잘 보여준다. "영국군 장교와 사병 간에는 완벽한 계급 차이가 있었다. 사병들은 모두 노동당에 투표한 반면 장교는 오직 한 명만이 그렇게 했다."
새누리당이 혁신을 스스로 걷어찬 것은 처칠의 불감증을 빼다박았다. 지난 총선에서 민심은 원내 1당의 위치까지 박탈하면서 변하라고 했으나 새누리당은 귀를 닫았다. 혁신을 걷어찬 데 대한 쏟아지는 비판 여론을 의식해 수습 모드에 들어갔다고는 하지만 잘 될지 의문이다. 새누리당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혁신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인 것 같다. 새누리당이 사멸(死滅)을 향해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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