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오직 감행하여라"인가?

평양고등보통학교
평양고등보통학교'연세대(영문학)'보스턴대 대학원(철학박사) 졸업. 전 연세대 부총장. 현 태평양시대위원회 명예이사장

20대 총선 참패 책임 소재 피하는 여당

이한구의 공천개입 잘못 시인 안 해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 지나치면 毒

자아반성 없으면 내년 대선 승리 못해

거대 여당임을 자랑하던 새누리당이 20대 총선으로 그 자리에서 밀려나 지금은 초라한 모습으로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고 느껴진다. 마땅한 일이다. 민주국가에서는 선거가 국민의 정권 심판이라고 한다. 민란이나 혁명으로 민심이 표출되는 나라들이 아직도 상당수 있는데, 그런 나라들은 민도가 낮기 때문에 선거를 통해서 민심을 헤아릴 수도 없고, 선거로써 부패했거나 무능한 정권을 교체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상당한 수준의 민주주의를 터득하고 소화했기 때문에 200년 이상 민주주의를 앞세우고 자랑하는 나라들에 비해 별로 손색이 없다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그러나 국회 자체가 후진을 일삼는 것도 염두에 두면서 여당의 선거 패배 후의 동태를 한 번 살펴보자.

그 당의 대표이던 김무성이 선거 패배를 놓고 "모두가 제 탓입니다"라고 사죄한 것은 국민의 기억에 남아 있지만, 그 이상의 공식적인 사과나 해명이 없었던 것 같다. 국민은 총선참패의 책임을 따지고 싶은데 새누리당은 오히려 그 책임 소재를 밝히지 않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회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말이다. 그럴 수도 있다. 어물어물하면서 세월만 보내면 그런 일이 과거로 매몰되고 역사의 안갯속으로 곧 사라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다르다. 만일 새누리당이 총선 참패 뒤에도 자아반성이나 비판의 과정을 생략하고 멀쩡한 표정으로 국민을 대한다면 내년에 실시될 19대 대선에서 승리하기가 어렵겠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일전에 평화통일자문위원 자격을 지닌 재미 교포와 그의 일행이 청와대로 초대를 받아 점심을 같이했는데 어쩌다 이 교포는 대통령과 7분간 독대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다. 그는 내 사무실을 찾아온 자리에서 자기가 대통령께 거침없이 했다는 한마디를 내게 전해주었다. 내가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인사인 줄 알기 때문에 더욱 힘을 주어 내게 그 말을 전했을 것이지만!

"대통령께서는 누가 뭐라고 해도 소신껏 밀고 나가셔야 합니다." 그것이 이 평통자문위원의 확고부동한 의견 표명이었지만 나로서는 좀 걱정스러웠다. 물론 박 대통령은 누구 말만 듣고 마음이 흔들릴 사람이 아닌 줄 잘 알고 있지만 공연히 걱정이 앞섰다. 새누리당이 위기에 처한 이 마당에 그런 권면이나 격려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초대 이승만 박사를 생각했다. 그가 아니면 대한민국이 없고 대한민국의 오늘 번영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위대한 인물에게 흠집이 나게 만든 인물들이 주변에 있었던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3'15부정선거를 누가 계획하고 누가 실천에 옮겼는가? 뒤에 재판받고 사형에 처해진 최인규 같은 인물을 한 번 생각해보라. 교육도 많이 받았고 품행도 단정했고 생기기도 잘생겼을 뿐 아니라 이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은 누구도 따르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의 충성심이 지나쳐 부정선거로 대통령에게 누를 끼친 것이 또한 사실 아닌가. 충성심이 때로는 양약이 아니라 독약이 된다.

새누리당의 20대 총선 패배의 책임이 전적으로 이한구의 부당한 공천개입에 있었다고 나는 믿는다. 특히 대구에서 유승민이나 주호영에게 공천을 주지 않은 것은 새누리당 패배의 원인 중에 두드러진 원인으로 지적된다. 왜 그런 과오를 시인하지 않는가? 왜 반성하지 않는가? 여당 안에 '친박'이 있고 '비박'이 있다는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전적으로 박 대통령의 책임이다. 왜 '비박'을 다 '친박'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비박'의 비협조가 대통령의 임무 수행을 야당보다 더 어렵게 만들지 않았는가?

붉은 깃발을 든 레닌은 1917년 볼셰빅(공산당 다수파)을 이끌고 혁명을 일으킬 때 "오직 감행하여라"라고 하였다. 총선에 패배한 '친박'과, 청와대와, 박 대통령이 "오직 감행하여라"라고 외치며 돌진하면 여당은 무너지고 19대 대통령은 그 당해서 나오기 어렵고, 대한민국은 몹시 흔들릴 것이다. 내 눈에는 그런 내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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