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하늘 바람', 이 시적인 제목은 내가 집안에 자주 뿌리는 유명 다국적 회사 공기탈취제의 향기명이다. '바람 속의 꽃향기'와 '비 내린 정원' 같은 이름 앞에서 구매자는 궁금해진다. 구체적으로 향기를 떠올릴 수 있는 '라벤더'나 '로즈' 같은 이름 대신 이런 은유적인 이름을 지닌 향기는 구매자의 호기심을 은밀하면서도 더 강렬하게 자극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든 화학물질에 대한 경각심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탈취제에는 4급 발암물질인 '암모늄클로라이드'가 포함돼 있다. 이걸로 생쥐 실험을 한 결과, 모체가 사망하거나 태아 수가 감소했다고 한다. 여름마다 어느 집에서건 뿌리는 살충스프레이의 주성분은 '퍼메트린'인데, 내분비계장애 추정물질이자 발암 가능성이 인정돼 EU(유럽연합)에서는 2008년부터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 환경부도 유독물로 지정했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제한된 용도 이하로는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고 한다. 제한된 용도란 정확하게 어느 정도를 말하는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환경부가 살균제 PHMG의 용도를 제한하지 않아서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지만 검찰은 환경부에 대해선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
미미한 양이라도 장기간 화학물질을 흡입할 경우 후두염이나 기관지 천식을 유발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세정제와 소독제를 구성하는 성분 중 EU에서는 사용이 금지된 5개 성분이 우리나라에서는 허용된다고 한다. 현재, 의약품과 화장품을 제외하고는 제품에 사용된 모든 화학성분을 구체적으로 공개할 의무가 없는 점도 걱정스럽다.
우리는 아주 조금씩 여러 종류의 화학물질을 들이마심으로써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고 정부는 이를 방조하고 있다. 캐나다 환경운동가인 릭 스미스와 브루스 루리에는 '슬로우 데스'라는 책에서 생체실험을 바탕으로 일상 속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고발하고 있다.
일상용 화학물질에 대한 관리는 참으로 복잡하고 비효율적이다. 관리를 담당하는 식약처,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가 서로 공조하는 체제도 아니다. 전문가들은 기능에 따른 관리가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품목에 따른 관리를 하기 때문에 문제점이 많다고 한다. 더구나 판매자가 최소한의 안전기준을 지켰다고 신고하는 자율안전인증시스템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정부는 전문성이 부족하고, 기업은 안전성은 무시하고 정부를 유혹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화평법(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지만 미국과 EU에서는 허가된 화학물질만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인 반면, 한국은 금지된 화학물질 외는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이 근본적인 차이이자 문제점이다. 다시는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피해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일상 속 화학물질 관리체계의 재정비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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