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를 통한 패키지 상품이 아닌 개별여행을 처음 다녀온 게 15년 가까이 되는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딸아이만 데리고 일본을 다녀온 때라 기억되는데, 그때는 할 일이 정말 많았다. 여행지 선정을 위해 먼저 서점으로 가서 두툼한 안내책자를 구입해야 했다. 당시 유명했던 '100배 즐기기' 시리즈 한 권 정도는 구입해놔야 마음이 든든했다.
그 책 속에서 마음에 드는 여행지들을 선택하고 지도를 찾아보며 동선을 연구했다. 책이 너무 두꺼워 가지고 다니기가 힘들 때는 필요한 페이지를 복사하거나 스캔한 후 인쇄해서 스크랩을 했다. 숙소를 찾기 위해서는 인터넷 여행카페에 가입해서 소개를 받거나, 여행사에서 알아봐야 했다.
간혹 현지의 큰 기차역이나 안내소에서 소개를 받기도 했지만 이럴 경우엔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해서 힘들었다. 맛집 정보들을 훑기 위해서는 이곳저곳 블로그들을 기웃거려야 했다. 여행지를 선택하고 맛집을 찾고 숙소를 고르는 일들을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챙겨야 했다. 항공편을 예약하고 할인쿠폰이나 패스를 얻기 위해선 여행사들을 찾아다녀야 했다. 동선에 따라 지하철이나 버스 등 교통편도 '탐구'해야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두어 달 정도는 그야말로 고난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몇 년 사이에 격세지감이 되고 말았다. 얼마 전 열흘 정도의 일정으로 미국을 다녀왔지만 여행 책자를 구입하거나, 지도를 다운받거나 인쇄를 하지 않았다. 맛집을 검색하지도 않았다. 대충의 일정을 잡고 항공권과 숙소, 렌터카만 한국에서 예약해두었다. 그 예약사항들은 스마트폰에 저장이 되어 있었다. 현지에서 모르는 길이 나와도 당황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지도앱을 열고 행선지를 입력하기만 하면 경로가 단박에 표시되니 말이다. 밥을 사먹어야 할 때는 근처의 맛집을 검색하면 별점 표시까지 나오니 먹고 싶은 메뉴에 따라 선택만 하면 되었다. 날씨도 척척 알아봐 준다. 내일 비가 예보돼 있으면 오늘 야외 관광을 하고 내일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면 된다. 차편이 필요하면 '우버' 앱만 있으면 몇 분 후 기사가 차를 내 앞에 멈춘다. 렌터카도 마찬가지. 구글 지도를 켜서 목적지만 입력하면 내비게이션 가동! 말이 안 통할까 봐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번역 앱이 있다.
모두 스마트폰 덕분이다. 그야말로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가면 여행 준비가 따로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스마트폰의 지배자는 바로 '구글 신(神)'이다. 구글 신이 가르쳐준 길로 가면 되고, 구글 신이 먹으라는 음식을 선택하면 후회가 없다. 낯선 나라에서 머물렀지만 불편한 점을 별로 느끼지 못하고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여행이 옛날만큼 설레고 가슴 뛰지 않는다. 책을 뒤지고 지도를 인쇄하고, 맛집을 찾아 인터넷의 바다를 헤매는 수고는 거의 사라졌는데, 이렇게 편해졌는데….
댓글 많은 뉴스
[기고] 박정희대통령 동상건립 논란 유감…우상화냐 정상화냐
이재명의 추석은?…두 아들과 고향 찾아 "경치와 꽃내음 여전해"
홍준표 "김건희, 지금 나올 때 아냐…국민 더 힘들게 할 수도"
정청래, 다친 손 공개하며 "무정부 상태…내 몸 내가 지켜야"
조국, 대선 출마 질문에 "아직 일러…이재명 비해 능력 모자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