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병구의 서울생활, 어떻습니까?] 강기원 한국거래소 파생상품시장 본부장

"금융거래 투자자 보호보다 자본시장 활성화에 더 무게 둬야"

▷1962년 경북 영천시 성내동 출생 ▷대구 대명초
▷1962년 경북 영천시 성내동 출생 ▷대구 대명초'경구중'대건고 졸업 ▷경북대 경영학과 졸업 ▷한국거래소 부이사장 겸 파생상품시장 본부장 사진'이성근 객원기자

"어떤 여건이든 감사하며 삽니다."

강기원(54) 한국거래소 파생상품시장 본부장(부이사장)은 늘 직장생활이 행복하다. 30년 직장생활 동안 '월요병'을 겪어보지 않았다. 모든 일을 즐겁게 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을 겨를이 없었다. 그의 가훈이자 삶의 철학도 '감사'다.

그의 낙천적인 성격과 감사하는 마음은 유가증권'코스닥'코넥스'선물시장 등을 총괄하는 준정부기관 부이사장까지 거침없이 오르는 데 일조했다. 30여 년 전 추운 겨울, 전신 동상으로 쓰러졌다 겨우 회복한 아버지를 총각 때부터 지금까지 모시고 사는 효자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육성회비를 제때 내지 못한 설움을 딛고 우리나라 증권'파생상품시장의 컨트롤타워인 한국거래소의 핵심 임원까지 오른 강 본부장으로부터 그의 삶의 역정, 한국거래소의 역할과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어떻게 자랐나.

▶부모님의 고향은 전남이지만, 내가 태어난 곳은 영천이다. 아버지는 함평, 어머니는 영광 출신이다. 그래서 나에게 영호남은 하나다.

큰집이 영천에서 술도가를 하는 바람에 부모님이 결혼하면서 영천으로 왔고, 서문통(영천시 성내동과 화룡동의 교차로) 인근에서 태어나 5살까지 살았다. 이후 대구로 이사를 해 대학까지 다녔다.

아버지가 병원 행정직으로 일했지만, 3남매의 학비를 대기에 빠듯했다. 어머니도 검도복 바느질 등 부업으로 생활비를 보탰는데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누나는 공부를 잘했는데도 대학을 포기하고 인문고 대신 상업고를 택했고, 여동생도 4년제 대학에 합격해놓고도 간호전문대를 가야 했다. 나는 초등학교 5년 때 반장이었는데, 500원가량 하던 육성회비를 제때 못내 담임 선생님한테 회초리를 맞기도 했다.

4살 많은 누나에게 종아리를 맞을 정도로 남매간에 엄격했지만, 집안 분위기는 화목했다. 어렵게 살았지만, 항상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대학에서 어떤 꿈을 꿨나.

▶대학은 집안형편을 고려해 전면 장학금을 받고 국립대에 입학했다. 대학 2학년에 올라가면서 삶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여러 책을 읽으면서 내 길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중 김동길 교수의 '한국 청년에게 고함'이란 에세이를 읽고 삶의 지표를 얻게 됐다. 나의 성장이 부모, 교사 등 주변 사람들의 산물이기 때문에 항상 감사하게 여기고, 성인이 된 뒤 이 감사함을 사회에 갚아야 한다고 결심했다. 이 같은 소명감을 실천할 수 있는 직업이 의사나 교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과인 탓에 의사의 길은 불가능했고 교수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국내 최고대학의 경영대학원을 목표로 고시를 준비하듯 공부에 매달렸다. 방학 때는 서울 신림동 고시촌을 찾았다. 학부 졸업을 앞둔 시점에 대학원 입학시험을 쳤는데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집안 형편상 대학원 공부에 더 이상 매달릴 수는 없었다.

-한국증권거래소는 어떻게 입사했나.

▶대학원 시험에 떨어진 뒤 취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국산업은행과 한국증권거래소 2곳의 추천을 받았는데, 한 곳을 택해야 했다.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공휴일에 출근하지 않고 근무지도 변동이 없는 증권거래소가 안성맞춤이었다. 1986년부터 증권시장이 폭발적이었고, 증권사가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1987년 증권거래소에 입사했다. 대학원 입학을 위해 워낙 공부를 많이 한 덕분에 공채 첫 시험에 곧바로 합격했다.

-어떤 일을 했나.

▶입사 당시 거래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상황에서 수작업으로 매매체결을 하는 일을 맡았다. 당초 시장부의 일반 직원이 이를 담당했지만, 주문이 너무 많아 신입직원 절반을 1년 동안 시장부에서 훈련시켰다. 증권거래소의 좁은 공간에 증권사 직원 등 500여 명이 북적거렸고, 밤 10시까지 일했다. 매매체결은 1997년부터 수작업에서 벗어나 전산화됐다.

-증권거래소는 어떻게 바뀌어왔나.

▶2005년 한국증권거래소와 코스닥증권시장, 한국선물거래소, 코스닥위원회가 합쳐져 한국증권선물거래소로 통합 설립됐다. 4년 뒤 한국거래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한국거래소는 주식, 채권,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지수증권(ETN), 파생상품 등을 모두 거래하는 종합거래소다. 유가증권'코스닥'파생상품시장의 운영 및 시장 감시 업무, 거래소의 전반적인 운영을 지원하는 업무 등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약 30년간의 직장생활에서 월요병을 느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일을 즐겼다. 전체 회사생활의 절반가량을 기획 분야에서 일했다. 특히 채권시장부와 시장감시부 업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채권시장을 스터디한 뒤 그 결과를 반영하는 일을 하면서 채권시장에 경제원리가 모두 담겼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분야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대학원에서 금융경제를 전공했다. 석사논문도 '채권시장의 구조개편에 관한 연구'다.

주식 매매가 공정하게 이뤄지는지를 살펴보는 시장감시부에서 5년 동안 근무한 것도 보람된 일이었다. 특수감리팀장을 맡아 증권회사가 고객관리를 제대로 하는지, 잘못하는 점은 없는지 등을 조사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일에 너무 빠져 폐렴이 걸릴 정도였다.

-현재 맡은 업무는.

▶대표적인 파생상품인 선물옵션을 관리하고 있다. 주식, 채권, 환 등이 본연상품이라면 금'석유'탄소시장과 관련된 선물이 파생상품이다.

-선물옵션의 경쟁력은.

▶한국거래소가 선물옵션시장을 일찌감치 개발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수리적 능력과 마인드가 뛰어나기 때문에 선물 등 첨단금융 분야에 경쟁력이 있다.

이자율이 2%, 경제성장률 3~4%대인 저금리'저성장시대에 금리상품나 환상품을 갖고 있다가 금리나 환 변동에 따라 10%가량 손해를 보면 몇 년 장사를 망치는 셈이다. 금융시장에서 그만큼 '헤지'(위험 회피 또는 분산)가 중요한데, 이것을 할 수 있는 도구가 선물이다. 1금융권으로 불가능한 선진화된 금융을 위해 선물옵션이 필요하다.

-금융인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는.

▶한국사회에서는 분배나 평등주의에 대한 인식이 깊이 깔려 있기 때문에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불거진 것과 같은 도덕적 해이 현상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민족성 속에는 '돈만 밝히는 것은 천하다'는 선비정신이 내재해 있다. 우리 금융시장에는 견제나 완충기제가 작동하는 등 건전하게 성장할 토대도 마련돼 있다.

-한국거래소의 향후 개선 방향은.

▶한국거래소는 시장을 관리하는 조직이면서 동시에 시장 그 자체다. 그동안 외국 투자자들의 요구에 덜 민감했는데, 이제는 글로벌스탠더드에 맞춰 외국인의 한국시장 접근이 편리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국내외 투자자가 우리 선물옵션시장에 뛰어드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금융시장 활성화를 위한 정부 역할은.

▶그동안 정부는 금융거래와 관련해 투자자 보호에 정책의 중심을 뒀다. 이제 국민들이 어느 정도 성숙했기 때문에 투자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에게 맡기고, 자본시장 활성화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실물경제보다 금융시장이, 금융도 은행보다 자본시장이, 자본시장에서는 증권시장보다 파생상품시장이 더 선진화돼 있다.

-금융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은.

▶금융은 기본적으로 '효율성, 온라인, 중앙집중, 규모의 경제' 등을 바탕으로 한다. 고객 대다수가 서울에 있기 때문에 금융을 통한 지방 활성화의 기여도는 낮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파급력이 높은 생산적인 기업을 유치하거나 이런 기업을 수도권으로 뺏기지 않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본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틀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조직이나 기업에서 경영관리 노하우를 활용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강단에 서고 싶다. 재능기부도 좋고, 일도 좋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대학 입시에 비해 사회 진출을 위한 취업에는 소홀한 측면이 있다. 대학을 위해서는 재수, 삼수도 하고 학부모들도 상당한 관심과 배려를 쏟지만, 취업을 위해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직장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부모한테 미안한 마음에 '취업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곤란하다. 쉽지 않지만, 눈높이보다 높여 취업해야만 일에 대한 만족도와 성취감이 생길 수 있다. 일이 즐겁고 만족감이 있어야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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