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같은 빌딩들, 옷가게, 도서관, 궁전들, 박물관 가득한 곳…." 화려한 동성로 거리 한복판에서 신나는 음악 소리와 함께 배우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길을 가던 시민들은 걸음을 멈추고 드레스와 정장으로 한껏 멋을 부린 배우들에게 마음을 다 빼앗긴다.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던 아이도, 팔짱을 낀 채 커피를 마시며 걸어가던 연인도, 불신지옥을 외치는 전도사도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화려한 뮤지컬 음악과 춤을 감상한다. 말 그대로 남녀노소 모두가 뒤섞인 채 공연의 일부가 된다.
대구시 주최로 문화가 있는 날(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마다 진행되는 뮤지컬 거리공연 풍경이다. 비록 화려한 무대 위도 아니고 커다란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함께하는 배우들의 열정과 좋은 공연을 관객에게 선사하겠다는 책임감으로 하나하나 정성껏 준비했다. 그리고 이제 관객에게 선을 보이는 시간. 설렘과 긴장감이 교차되었던 첫 번째 곡이 끝나자 사람들의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던 그때 관객 쪽에서 항의가 들어왔다. 어떤 사람이 객석 인근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것이었다. 나는 배우들에게 집중하느라 관객 쪽 상황을 살피지 못하고 있었기에 당황했다. 스태프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폐지를 주우며 생활하는 것으로 보이는 한 사내가 있었다. 입가에 만면의 미소를 띠고 있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의 얼굴은 어둡고 초라했다. 회색의 빛바랜 옷깃에서 세월과 인생의 무게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는 재차 담배를 꺼 달라는 스태프의 부탁에 마지못해 짧은 꽁초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러고는 자리에 앉은 채 공연이 끝날 때까지 배우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는 사내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눈동자는 마치 우리의 노래와 춤 저 너머에 존재하는 신기루를 보는 듯 텅 비어 있었다. 길을 가다 우연히 맞닥뜨린 노랫소리가 그의 영혼을 잠시 꿈꾸게 했던 걸까?
예술이란 때로는 삶에 그것을 들여앉힐 만큼 녹록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속을 예고 없이 적실 수도 있다. 그가 바라본 우리의 몸짓은 광대처럼 자신을 희롱하거나 혹은 그의 영혼을 녹이는 무엇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몸짓은 비싸고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때로는 추하고 적나라하다. 우리가 노래하는 것이 바로 삶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많은 방식으로 전달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은 영혼의 감각으로 빨아들인다. 누군가의 영혼에 가닿는 것. 어쩌면 그것이 진짜 예술이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잠시 달콤한 꿈을 꾸던 그의 텅 빈 눈동자를 아마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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