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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Können의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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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스트리아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외국생활의 시작은 무척 낯설고 힘들었다. 한국인 선배 신부가 있었지만 수개월이 지나 귀국을 하고, 혼자 독일 신부들과 수사들이 있는 수도원에서 전투적인 삶을 살아야 할 그때 가뭄에 단비같이 정말 고마운 한 분이 있었다.

파독 광부 출신 박베드로 씨다. 나는 신부, 그분은 평신자이고 나는 젊고 그분은 연세가 있었지만, 우리는 서양식으로 친구처럼 지냈다. 힘들 땐 힘들다고, 좋은 일이 있으면 좋다고 만나 한잔을 나눴다. 그분의 광부 시절 삶의 애환을 들을 수 있었고, 그는 서양 생활 선배로서 많은 도움을 줬다.

베드로 씨에게 느닷없이 췌장암이라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수술 후 치료가 되는 듯 보였으나,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암은 재발했고 급속도로 악화했다. 결국 2003년 6월 29일 늦은 밤, 병원에서 나는 그의 단출한 가족과 함께 그와 세상에서의 이별을 고했다. 임종 전 잘 가시라는 말에 베드로 씨는 예쁜 구슬 같은 눈물 한 방울로 마지막 대답을 했다.

임종을 맞이한 부인은 경황이 없었고, 아들과 딸은 어렸다. 나는 수도원에 함께 사는 독일 신부에게 요청해 고인의 장례 절차를 기꺼이 도와주기로 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사람이 사망하면 사나흘 뒤 평소 고인이 다니던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하고, 시립공동묘지에서 간단한 고별식을 치른 후 매장 또는 화장을 한다. 그런데 그는 평소 동네 성당이 아닌 곳을 다녔기 때문에, 의미 있게 장례미사를 할 곳이 없었다. 나는 독일 신부로부터 소개받은 장례업체를 찾아가 시립공동묘지 안에 있는 고별식장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는지 협의했다. 나는 분명히 물었다. "그곳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습니까?" 직원이 분명히 대답했다. "물론. 할 수 있습니다."

다음 날 답사차 고별식장을 찾았는데 눈이 휘둥그레졌다. 천주교 미사에는 제단과 미사 제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곳은 아무것도 없이 단상만 하나 있는 빈 홀이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장례업체에 전화해 따지기 시작했다. 혹시 직원이 천주교 미사를 모르나 싶어, 종교를 물으니 천주교 신자라고 한다. "천주교 신자라는 사람이 말이야! 아무것도 없는 빈 창고에서 어떻게 미사를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한참 따졌다. 직원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분명히 할 수 있냐고 물었고 당신은 할 수 있다고 했지 않았던가? 결국 나는 모진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당신은 나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분이 풀리지 않았다. 수도원에 돌아와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장례업체를 소개시켜 준 독일 신부가 눈이 동그래져 찾아왔다. 직원이 그 신부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있는 그대로 사정을 털어놨더니 독일 신부는 오해의 소지에 대해 설명해줬다.

독일어 können는 '할 수 있다'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can인 셈이다. 나는 그 단어를 장례업체에서 모든 것을 준비해 줘 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했고, 직원은 내가 미사 제구를 준비해 올 것으로 생각하고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서로 오해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그런데 이제는 직원의 실수가 아니라 내 말이 문제가 되었다. 독일권 사람들은 서로 간의 신뢰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고의적인 거짓말이나 은폐로 신뢰를 깨뜨리는 행동을 하면, 그는 그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없다. 공무원과 정치인 등이 있는 공공의 경우 더욱 엄격하다. 당신이 나를 속였다고 한 나의 마지막 말은 직원의 인격을 공격한 것이었다. 나는 장례업체를 찾아가 직원에게 정중하게 사과하고, 다음 날 나의 벗 베드로 씨를 하늘로 잘 보내드릴 수 있었다.

사람은 알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믿으면서 살아간다. 내일 해가 뜰 것을 알지 못하지만 그렇게 믿는다. 길을 가다가 만나는 사람이 나에게 해코지를 할지, 말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안 할 것이라 믿는다.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 가격이 옳은 것인지 우리는 잘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정당하리라고 우리는 믿는다. 신뢰는 인간 사회의 기초이자 근거이다. 그 신뢰는 설령 실수하고 실패하더라도 서로에게 진실할 때 이루어진다. "하느님은 진실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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