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世事萬語] 침대 축구

우루과이의 저명한 저술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1940~2015)는 대단한 축구광이었다. 그는 저서 '축구, 그 빛과 그림자'에서 축구의 순수성과 아름다움을 찬양했다. 한편으로, 국제축구연맹(FIFA)의 부패와 타락, FIFA와 각국 권력층과의 유착 관계, 이권 다툼과 개입 등을 비판했다. 축구를 둘러싼 거대한 스포츠 마케팅과 상업화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이러한 요소들이 순수한 스포츠로서의 축구를 좀먹는다고 꼬집었다. 갈레아노의 우려는 FIFA의 부패 추문이 터짐으로써 현실이 되었다.

갈레아노가 걱정했던 것은 주로 축구의 인기에 힘입은 경기장 바깥의 요인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라운드 안에서 일어나는 해악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할리우드 액션'과 과격한 백태클은 경기 결과와 선수들의 안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이미 심판의 엄중한 감시 대상이 되었다. '침대 축구'는 그렇지 않다. 이기고 있는 팀이 시간을 지연하면 노란 카드를 주거나 선수가 부상을 당하면 경기장 바깥으로 신속히 옮기는 조치가 취해지기는 한다. 하지만, 다친 척 그라운드에 드러누워 2, 3분 이상 시간을 흘려보낼 때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리우 올림픽 축구 8강전에서 온두라스가 우리나라에 1대0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침대 축구'로 일관하다 승리를 챙겼다.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골 결정력을 보여주지 못한 우리 선수들을 탓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온두라스의 경기 매너는 그 자체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우리나라가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고전하다 득점한 뒤 시간을 지연하는 플레이가 있었지만, '침대 축구'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중동 국가들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침대 축구'가 다른 대륙 국가로 확산하는 걸까. 올림픽처럼 큰 대회에서 이처럼 노골적인 '침대 축구'가 펼쳐진 경기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침대 축구'는 페널티킥을 유도하는 할리우드 액션만큼 나쁜 행위이다. '침대 축구'를 전술의 일부라고 간주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패스 돌리기와 같은 시간 지연적 전술과 '침대 축구'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침대 축구'는 부정직한 행위로 경기의 흐름을 끊는다. 순간적으로 움직이고 달리는 것이 핵심인 스포츠에서 거짓으로 드러누워 시간을 끌다니 '반축구'적인 행위이다. 가장 많은 팬이 그토록 열렬히 사랑하는 스포츠에서 더는 보고 싶지 않은, 구역질 나는 행위이다. 이제 '침대 축구'에 대해 제재를 가할 때가 되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