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드 사태 이후 성주의 명암] 정부 횡포 저지했지만, 큰 생채기 남은 군민들

23일 성주군청 앞마당을 둘러싼 천막에 사드 배치 반대 메시지가 적힌 종이가 걸려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23일 성주군청 앞마당을 둘러싼 천막에 사드 배치 반대 메시지가 적힌 종이가 걸려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김항곤 성주군수와 성주 사드 배치 철회 투쟁위원회(이하 투쟁위)의 제3의 장소 검토 요청 이후 국방부가 이를 전격 수용, 성주의 사드 배치 철회 투쟁이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성주읍 한복판 성산포대 사드 배치를 무산시키면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철저히 무시한 일방통행식 중앙정부의 횡포를 저지, 성주 군민들은 '지방의 힘'을 보여줬다. 하지만 성주의 경제 상황은 엉망이 되고 평화롭던 마을 민심이 갈라지는 등 사드 갈등 과정에서 성주 사람들은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결국 백기 든 정부

지난달 13일 국방부는 일방적으로 성주 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했다. 어떤 사전 협의도 없었다.

밥상 앞에서, 참외 하우스 안에서, 성주 군민들은 사드라는 단어와 성주라는 지명을 함께 들었다. 김항곤 성주군수를 비롯해 성주 사람 모두가 언론을 통해 사드 배치 결정 통보를 받아든 것이다.

성주 군민 모두가 들고일어났다. 김항곤 군수는 물론 모든 군민들이 나섰고 투쟁위가 앞장선 가운데 무려 40여 일 동안 사드 배치 철회 투쟁을 이어왔다.

군민들은 사드 배치 철회 투쟁을 이어가기 위해 투쟁위원회를 꾸렸고 엄청난 성금을 모금해 투쟁위 운영 경비로 쾌척하는 등 주민 운동의 모범을 보여줬다.

황교안 국무총리 방문 당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40여 일 동안 폭력과 난동 등 볼썽사나운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않았다. 촛불문화제 등 평화적 방법으로 사드 성산포대 배치의 비민주성을 전국은 물론, 해외에까지 알렸다.

지방을 만만하게 보던 중앙정부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국방부가 제3후보지 검토에 전격 착수하겠다고 22일 발표한 것이다.

투쟁위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내는 저력을 발휘했다. 지난 21일 회의를 열고 33명의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제3의 장소 요청에 대해 찬반투표를 실시해 찬성 23명, 반대 1명, 기권 9명으로 국방부에 '성주 성산포대를 제외한 제3의 장소를 행정적인 절차를 거쳐 검토해줄 것을 건의하자'고 결정했다.

대한노인회 성주군지회는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성주 군민의 자긍심을 세웠다"고 평가했다.

◆성주 전체가 붕괴

사드 배치 철회 투쟁을 해온 성주는 명품 참외의 고장이란 명성에 엄청난 상처를 입었다.

성주참외는 연간 4천억원의 수익을 올려 왔는데 올해는 지난해 대비 20%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드 참외' 논란에다 참외밭 갈아엎기 등으로 정상적인 농사짓기와 판매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성주군 행정이 마비됐고 군민들의 생업도 멈췄다. 성주군은 지난달 음악회에 이어 공설운동장 완공 기념 군민화합 한마당 등 크고 작은 행사를 모두 취소했다.

성주군의회는 일정상 이달에 임시회를 열어야 하지만 투쟁위가 임시 사무실로 사용하다 보니 정상적인 의정 활동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성주 대가천'포천계곡이 있는 성주 서부권은 매년 여름철 10만 명 이상의 가족 단위 피서객이 찾는 명소였지만, 올해는 파리만 날렸다. 전국적으로 피서지마다 피서객이 넘쳐났지만 이곳 피서객은 지난해 9만6천 명에서 올해 5만2천 명으로 무려 40%나 급감했다. 평일에는 지난해 20% 수준에도 못 미쳐 피서지 특수를 노리던 주민들에게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안겼다.

'찢어진 민심'은 성주가 받은 상처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다. 제3후보지 검토 요청을 투쟁위가 공식 입장으로 냈지만 '무조건 성주에는 안 된다'는 목소리를 내는 주민들도 있어 주민들 간 반목이 여전히 깊은 상황이다.

군민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중앙정부 차원의 보상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고 군민들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백은주(선남면) 씨는 "중앙정부가 군민들의 동의 절차를 거쳤다면 이렇게까지 갈등을 빚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군 전체가 공황 상태에 빠지고 경제마저 붕괴된 것에 대해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새누리당 이완영 국회의원은 "정부는 제3의 장소 요청을 한 성주 군민의 우국충정에 대해 높이 평가해 줘야 한다. 이제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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