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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안고수비(眼高手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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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학 수시 원서를 쓰는 기간이라 고3 진학실은 입시 상담으로 북새통이다. 요즘에는 대학 입시 원서를 집에서 인터넷으로 쓰다 보니 예전처럼 담임선생님이 원서에 도장을 찍어주네 마네 하는 실랑이 장면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요즘은 각종 프로그램이나 졸업생들의 진학 데이터를 바탕으로 합격 가능성을 예측하여 지원 전략을 짜거나 자기소개서의 방향 설정과 같은 것이 상담의 주가 된다.

그런데 상담을 하다 보면 원하는 대학과 실력이 큰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차선책으로 대학 이름보다 자신에게 맞는 과를 찾아보려고 한다. 그런데 내신도 안 좋고, 수능으로 수시 최저기준도 만족하지 못하는 수준이라 높은 대학은 불가능하지만 막무가내로 "백일장 장려상 받은 거 있는데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문예창작과 갈 수 있지 않을까요?", "봉사활동 좀 했는데 자소서만 잘 쓰면 명문대 갈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학생부종합전형이 생겨난 후 그렇게 해서 명문대에 간 경우는 없다.) 이런 경우를 약간 비하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하는 말이 '안고수비'(眼高手卑)이다. 이 말은 한자 그대로 눈은 높고 손은 낮다. 즉 희망사항이나 기대치는 높지만 실력은 그에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가진 실력보다 더 높은 무언가를 원하고, 현재 실력보다 더 높은 기대치를 가지고 있다. 만약 사람에게 그러한 면이 없다면 사람은 그냥 현실에 안주하거나 퇴보를 해 버리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고수비를 말하는 사람도 실은 안고수비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안고수비하다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진짜 문제는 손(실력)이 눈(이상, 기대)을 따라가려고 하지 않는데서 발생하는 것이다.

1924년 3월 2일 자 동아일보에는 1923년 일어났던 관동대지진으로 어쩔 수 없이 귀국한 유학생들에 대한 기사가 있다. "귀환 후에도 역시 학업을 계속할 길이 망연할 뿐만 아니라 취직을 희망하여도 그 역시 도리가 없고, 설혹 취직할 기회가 있을지라도 대개는 안고수비한 관계로 취직을 못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기사에 나오는 지식인의 모습을 채만식의 소설 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인텔리가 아니 되었으면 차라리 노동자가 되었을 것인데 인텔리인지라 그 속에는 들어갔다가도 도로 달아나오는 것이 구십구 퍼센트다. 그 나머지는 모두 어깨가 축 처진 무직 인텔리요, 무기력한 문화 예비군 속에서 푸른 한숨만 쉬는 초상집의 주인 없는 개들이다. 레디메이드 인생이다."

지금 안고수비한 학생들이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몸부림이 없다면 대학을 나와도 더 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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