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9월 13일 매일신문(당시 대구매일신문) 주필 최석채는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설로 권력을 질타했다. 임병직 주미대사의 대구방문 때, 학생들이 아침밥도 못 먹고 동원되어 뙤약볕에서 몇 시간이나 기다렸다가 잠깐 수기를 흔들고 돌아온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관행이었지만 최 주필에게는 묵과할 수 없는 권력의 횡포였다. 자유당 경북도당 검찰부장 홍영섭 등은 다음 날 괴청년 40여 명을 이끌고 신문사에 난입, 인쇄시설을 부수고 발행 중인 신문을 빼앗았다. 경찰 간부는 "대낮의 테러는 테러가 아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고,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를 씌워 오히려 최 주필을 구속했다.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자유당에게 그는 가시 같은 존재였다. 3'15부정선거 때 그는 또다시 기개를 보였다. 3월 17일 자 사설 '호헌 구국운동 이외에 다른 방도는 없다'였다. 2000년 '세계 언론자유 영웅'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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