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여우를 잡았다. 잡아먹힐 위기에 처한 여우는 도리어 호랑이에게 큰소리를 친다. "나는 천제로부터 백수의 왕에 임명되었노라. 나를 잡아먹으면 천제의 명령을 어긴 것이 되어 천벌을 받을 것이다. 내 말이 거짓이라 생각되면 나를 따라와 봐라. 어떤 놈이라도 두려워서 달아날 것이다." 긴가민가 호랑이는 여우 뒤를 따른다. 그런데 실제로 만나는 짐승마다 달아나는 것이 아닌가. 이를 본 호랑이는 여우의 말을 믿게 된다. 동물들이 여우가 아닌 자신 때문에 달아난다는 사실을 호랑이는 끝내 알아채지 못했다. 중국 전국책의 초책에 나오는 사자성어 호가호위(狐假虎威)의 유래다.
호가호위란 말 그대로 여우(狐)가 호랑이(虎)의 위세(威)를 가장(假)해 힘을 과시하는 것이다. 여우는 약삭빠르고, 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호랑이는 어리석다.
최순실 씨 모녀의 행실을 보며 떠오른 말이 호가호위다. 대통령을 등에 업은 최 씨의 행각은 무소불위였던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비선 실세가 최 씨임을 간파한 이는 2014년 '정윤회 문건' 유출 혐의로 구속기소됐던 박관천 전 경정이었다. 박 씨가 검찰 수사에서 "우리나라 권력 순위는 최순실 씨가 1순위, 딸 정유라 씨가 2위,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이 시중을 떠돌았다.
최 씨가 청와대 관저를 무람없이 드나들고 인사를 좌지우지한다는 말도 나왔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순식간에 재벌들이 774억원을 모금한 데도 최 씨 배후설이 등장했다. 압권은 측근이 "회장(최 씨)이 제일 좋아하는 건 (박 대통령의) 연설문 고치는 일"이라고 말한 사실이다. 당연히 청와대는 '말이 되는 소리냐'며 펄쩍 뛰었다.
물론 이 가운데 사실인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공통점을 찾으라면 이 모두가 최 씨 측 호가호위의 산물이라는 점일 것이다. 최 씨가 박 대통령과의 친분 관계를 내세워 세를 과시하며 일을 벌였을 가능성이 크다.
박 대통령이 이를 몰랐다면 어리석은 것이고, 알고서 외면했다면 더 어리석은 일이다. 대통령이 그런 어리석음에 빠져 있다면 깨우쳐 줘야 하는 것은 검찰이다. 하지만 여전히 검찰 눈엔 달아난 최 씨가 호랑이로 보이는 모양이다. 범죄 혐의가 보이면 압수 수색을 통해 증거부터 확보해야 하는데, 주변 인물이나 소환 조사하며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 그래서야 대통령의 어리석음을 누가 깨우쳐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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