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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팔도유람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 경기도 조선 왕릉들

동구릉에 위치한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동구릉에 위치한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대한민국 사람에게 왕릉에 대해 물으면 십중팔구는 신라 고분군을 이야기할 것이다. 수학여행의 추억을 차치하고서도 고분의 웅장한 형태와 화려한 껴묻거리, 최근엔 볼 수 없는 석실 형태의 봉분 등 여러 볼거리가 한데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반면 비교적 최근 시대의 유적이자 보존상태가 뛰어난 조선 왕릉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유교적 가치관이 지배한 시대였던 탓일까. 조선 왕릉에서는 통일신라나 고려 시대 왕릉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장식물이나 특이한 형태를 쉬이 찾아 보긴 힘들다. 그러나 조선 왕릉에는 여타 왕릉에서 보기 힘든 정갈함과 자연과의 조화, 특히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풍부하다. 알에서 태어났다는 박혁거세 이야기처럼 구전으로 전해진 비현실적 설화가 아니라, 희로애락과 흥망성쇠가 모두 담긴 역사적 사실 속 살아있는 조선 왕들의 발자취는 역사교육의 산 현장이다. 경기도의 대표적인 조선왕릉 4곳을 소개한다.

이성계 건원릉 위치한 천혜 吉地

◆구리 동구릉

조선왕릉 중 가장 큰 규모인 195만㎡(59만 평)의 능역을 자랑하는 구리 동구릉에는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후비가 잠들어 있다. 숲이 울창해 삼림욕을 즐기기에도 좋고 학생들의 소풍이나 체험학습의 장으로도 자주 활용되는 곳이다.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도 이곳 동구릉에 있다. 일설에 따르면 한양으로 천도해온 태조는 생전에 고려 왕릉이 산악지대 여러 곳에 흩어져 있어 참배도 어렵고 관리에도 많은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에 태조는 자신과 후손들의 유택(幽宅)을 한양 가까운 곳에 정하기 위해 망우리 고개에 올라 왕릉 군락지로서 더없는 길지인 동구릉을 직접 택했다고 전해진다.

이 밖에도 왼쪽에 헌종, 가운데에 효현왕후, 오른쪽에 효정왕후가 잠든 경릉도 볼거리다. 봉분 셋이 나란히 있는 삼연릉 형태가 대단히 파격적이다. 동구릉의 능 중 가장 마지막에 생긴 곳으로 이곳 역시 정혈이 모여 있는 명당 중의 명당이다.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197. 입장료 1천원. 동절기 관람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

숙종'인현왕후'장희빈 함께 잠들어

◆고양 서오릉

서울 서쪽과 경계를 이루는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에 창릉'익릉'명릉'경릉'홍릉 등 5기의 왕릉이 있어 서오릉이라 이름 붙여졌다. 구리 동구릉 다음으로 큰 조선 왕조의 왕실 족분군으로, 울창하게 우거진 조경이 빼어나 주민들의 산책코스로도 사랑받는 곳이다.

서오릉에 잠든 왕실 인물 중 가장 두드러지는 사연을 가진 인물은 숙종과 인현왕후, 그리고 장희빈이다. 조선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낳은 이들은 이미 영화와 연극, 드라마 등의 소재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비참한 말로를 맞은 장희빈의 묘가 인현왕후와 함께 있다는 것이 다소 어색한데, 이는 1970년 당시 경기 광주군에 있던 희빈 장씨의 묘를 보존 차원에서 서오릉으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희빈의 묘터는 봉분과 곡장, 석물 등이 다른 묘에 비해 다소 초라하게 형성돼 있다.

이 밖에도 서오릉에는 영조의 넷째 부인이며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의 수경원도 자리하고 있다. 왕가에 시집와 세자를 생산했지만 왕에 의해 아들을 잃은 비운의 여인이다. 이처럼 서오릉은 다른 왕릉에 비해 궁중 여인들의 고단하고 애달픈 삶을 두드러지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92. 입장료 1천원. 동절기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관람 가능.

태묘 모으는 중 상당수 소실 안타까움

◆고양 서삼릉

서오릉에 5기의 왕릉이 있다면 서삼릉은 이름 그대로 예릉'희릉'효릉 등 3기의 왕릉이 있다. 왕릉으로 이어진 1㎞ 남짓의 진입로가 볼거리다. 양옆에 줄지어 선 포플러 나무가 잘 정돈된 채 적당한 굴곡의 산책로와 어우러져 호젓한 느낌을 준다. 서삼릉은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희릉을 조성하면서 조선왕릉으로 자리 잡게 됐다. 성종의 두 번째 왕비이자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의 회묘도 이곳에 있다.

서삼릉에서 조선 왕실의 전통과 시대적 아픔이 가장 깊게 밴 곳은 태실이다. 태실이란 왕실에서 아기가 태어났을 때 그 태반과 탯줄을 묻는 석실을 말한다. 조선 왕실에서는 산모가 아기를 출산하면 임금이 직접 종을 울리고, 아기의 탯줄과 태반은 길일을 택해 백 번을 씻은 다음 미리 제작된 태항아리에 소중히 담았다. 이미 나온 아이의 태가 다음 태어날 아이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당시의 풍습에 따라서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당시 전국에 흩어진 임금의 태묘 21위, 대군'세자'공주 등의 태묘 32위 등 총 53위를 서삼릉 태실로 모으는 과정에서 태항아리 등 부장품들이 다수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뿐만 아니라 무차별적 수탈행위에 의해 묻혀 있는 태들의 진위조차 파악하기 어려워 안타까움을 더한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길 233-126. 입장료 1천원.

정조'사도세자 한곳에…孝 정신 강조

◆화성 융'건릉

융'건릉은 사도세자와 헌경왕후를 합장해 모신 융릉과 그의 아들 정조와 효의왕후의 합장릉인 건릉을 함께 부르는 이름이다. 좁고 굽은 길과 주변에 늘어선 짙푸른 초목이 들판과 어우러져 시골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능역으로 들어서면 울창한 소나무숲 사이로 길이 이어지고 곧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융릉이고 왼쪽으로 가면 건릉이 나온다.

융'건릉의 테마는 효(孝) 정신이다. 조선 왕조에서 가장 효성스러운 왕으로 꼽히는 정조와, 뒤주에 갇혀 숨진 비운의 인물 사도세자의 능이 한데 있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한 맺힌 죽음을 지켜본 정조는 재위기간 내내 아버지의 온전한 복권을 위해 눈물겨운 효심을 바쳤다. 서울 동대문구 기슭에 있던 사도세자의 능을 현재의 경기 화성시로 옮겨온 것도 정조의 결정이다.

정조는 한 해에 여러 차례 수백 명의 행렬을 이끌고 아버지의 능참 길에 올랐는데, 귀로에 오를 때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죽어서도 끝내 아버지 곁에 묻혔으니 그 효심이 대단하다.

경기 화성시 효행로 481번길 21. 입장료 1천원. 동절기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관람 가능.

사진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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