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경주의 시와함께] 귀가 서럽다

이대흠(1968~ )

강물은 이미 지나온 곳으로 가지 않나니

또 한 해가 갈 것 같은 시월쯤이면

문득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네

사랑했던가 아팠던가

-중략-

슬픔을 아는 자는 황혼을 보네

울혈 든 데 많은 하늘에서

가는 실 같은 바람이 불어오느니

국화꽃 그림자가 창에 어리고

향기는 번져 노을이 스네

꽃 같은 잎 같은 뿌리 같은

인연들을 생각하거니

귀가 서럽네

귓속에 바스락거리는 일들이 많다. 마음에 상처를 주어 용서를 빌어야 하는 일도 바스락거리고, 이제는 용서를 받고 싶은 것들도 바스락거린다. 귓속에 바스락거리는 것들이 일이 되어 돌계단도 한눈을 팔지 못해 그 자리고, 구름은 어딜 가도 물들기만 한다. 소리 내어 우는 건 드물어 꽃잎이 되는 새도 있고, 숲으로 끌고 간 빗줄기는 계곡 옆에 누웠다. 귓속에 드물게 새가 찾아와도 수저질을 하고, 약을 사러 약국에 가고, 이불솜을 바꾸고, 흰 머리를 뽑았다. 봄 호랑이가 종아리를 흔들고 지나가듯 몹쓸 사람, 너무 지나쳐 버린 건 아닌지, 저녁에 국물 있는 거 같이 먹자 한 번 못했다. 귓속에 새가 들어와 캄캄하다 한다. 마음이 지나간 자리라서 도움을 주고 싶은데, 죽은 가지에만 앉는 새는 결국 가지 위에 앉아 외롭게 꽃 피울 곳을 찾는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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