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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혼자서만 설레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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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규
김진규

이루어진 사랑은 생활로 변한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만이 사랑 그대로 남는다. 물론 이는 지극히 주관적인 내 생각이다.

남들이야 뭐라건 말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는 성격과 성격의 합(合)일 수밖에 없다는 내 오랜 주장처럼 말이다.

스무 살 적, 짝사랑이라는 걸 했다. 그 어떤 한마디 말도 없이, 그 어떤 별다른 행동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었다. 그가 그날, 그 햇발 아래, 푸른 색 셔츠를 입고, 거기 서 있었다는, 그 사실 하나뿐이었다.

이후 나는 어쩜 그렇게까지 할 수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지능적인 인간이 되어갔다. 좀 더 자주 그의 눈에 뜨일 수 있도록 치밀하게 계산해 움직이면서도 번번이 우연인 척 가장했고, 그가 행여 나에게 주의를 돌리려고 하는 기미가 보이면 '내가 뭘!' 하는 뻔뻔함으로 재빠르게 숨어들었다.

그도 헛갈렸겠지만, 나는 더했다. 점점 혼돈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내 마음이 알려지길 원하면서 동시에 알려지지 않기를 원하는 모순 때문에 말이다.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그렇지만 정념을(다만 그 지나침을) 완전히 감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주체가 너무 나약해서가 아니라, 정념은 본질적으로 보여지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감추는 것이 보여져야만 한다. 내가 당신에게 뭔가 감추는 중이라는 걸 좀 아세요, 이것이 지금 내가 해결해야 하는 능동적인 패러독스이다. 그것은 동시에 알려져야 하고, 또 알려지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내가 그것을 보이고 싶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은 알아야만 한다. 내가 보내는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다.'

날이 지나면서 나는 더 괴로워졌다. 이도 저도 아닌 줄타기로 버둥거리다가 떨어져 죽을 것만 같았다. 하여 아주 조심스럽게 알렸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거절당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짝'이라는 이름을 달고 사랑으로 남아있다.

최근에 '사랑'에 관한 소설 한 편을 탈고했다. 출간이 되든 말든, 만들고 싶어 만든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내내 지껄여온 내 말들과 생판 다르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러니까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고 살아남은 사랑을 다루었다는 면에서 그러하다. 심지어 쓰는 동안 어찌나 설레었던지.

그래도 달라질 건 없다. 누가 '사랑'에 대해 물어본다면 난 여전히 똑같이 대답할 것이다. 이루어진 사랑은 변질된다고.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만이 사랑 그대로 남는다고. 그래서 그런 한계를 가진 남녀 사이의 사랑을 믿지 않는다고. 내 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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