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호가 목적지도 나침반도 없이 표류하고 있다. 선장에 대한 선원의 신뢰가 바닥이다.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믿음을 거둬들였다. 대통령은 두 차례의 사과 담화에서 여론을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 1차 시험에서 낙제를 했으면 2차라도 잘 쳐야 했는데 재시험의 기회마저 날려버렸다. 외교안보와 경제는 대통령이 계속 맡는다는 수준에서, 내치에서 손을 떼라는 선도 넘어 2선으로 완전히 물러나라는 단계로까지 악화됐다.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상황을 가래로도 막기 힘들게 만든 것이다. '내 탓이오'와는 동떨어진 화법으로는 성난 민심을 잠재울 수가 없었다.
12일에는 최대 규모의 집회가 예고돼 있다.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이 들고 일어난 5일 집회 규모를 훨씬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구호는 간단명료하다. 물러나라는 거다. 사람들이 모이면 모일수록 온건론이 설 자리는 좁아진다. 그 빈자리는 강경론이 차지한다. 그때는 하야밖에 나올 게 없다.
어느 유력 외국 잡지는 대통령 얼굴 사진을 표지에 싣고 이런 제목을 달았다. '대통령은 더 버틸 수 있을까?' 언제나 권력 편이라는 검찰 수사에서도 '꺼리'는 무궁무진해 보인다. 손바닥으로만 하늘을 가리기에는 역부족이다. 대통령이 최순실 사태의 주역이었는지, 조역이었는지, 대역이었는지는 머지않아 밝혀질 것이다. 그때 가서도 대통령의 권력에 대한 미련이 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우주의 기운을 이야기하던 대통령의 이야기를 국민들이 곧이들을 리 없다. 기업들을 윽박질러 돈을 뜯은 정부가 이야기하는 경제위기론에 누가 귀 기울이겠나. 시간도 박 대통령 편이 아니다. 지금 대통령은 초읽기에 몰려 있다. 게다가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는 허수아비다. 새 총리 내정자는 괜히 상처만 입었다. 새 경제부총리와 안전처 장관은 공중에 붕 떠버렸다. 안타깝게 됐다. 그 아래 장관들은 물어보나마나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정치는 마비고 경제가 위기라지만 나라 밖 상황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북핵 위기 대처 능력 부재는 이미 입증이 됐고, 대통령이 얼굴로 나서야 하는 정상외교는 올스톱이다. 나라 안이 조용할 때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던 외교가 지금 잘 돌아갈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저러나 국민들 사이에서 거국중립내각보다 하야 이야기가 더 커지면 흐름을 돌이키기는 어렵다. 하야가 현실이 되면 존재감 없는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으로 5년 임기의 새 대통령 선거를 관리하게 된다. 믿음이 갈 리 없다. 국민들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60일뿐이다. 제대로 된 검증은 꿈도 꿀 수 없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지 7주, 최순실과 최태민 부녀 이야기가 정치권에 나돈 지 10년 가까이나 됐는데도 제대로 된 검증은 사실상 없었다. 그래서 60일은 너무 짧다. 여야 정당의 후보 경선 시간으로도 부족하다. 법정 선거운동 기간이 23일이니 이 시간마저 빼면 실제로는 한 달밖에 없다. 선거 분위기에 휩쓸리다 보면 누가 누군지도 모르고 표를 찍어야 한다. 제2, 제3의 최순실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또 손가락을 원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 여권의 부활 시간을 벌기 위해 하야만은 안 된다는 게 결코 아니다. 대통령보다 나라 걱정이 더 크기 때문이다.
거국내각의 가능성이 아직은 살아 있다. 여야가 합의만 한다면 지금 같은 식물 정부, 식물 대통령으로 인한 국정 표류, 국정 붕괴 상황보다는 낫다. 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날수로 411일이다. 제대로 된 선거 관리도 가능하고 부지런히 서둔다면 개헌도 해 볼 수 있는 긴 시간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의원내각제 같은 분권형 권력 시스템에 대한 실험도 가능하다. 원해서 얻어진 시간은 아니지만 잘 활용한다면 전화위복이 될지 누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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