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가 최 씨 일가와 그 측근들의 국정 농단으로 확산하면서 국민의 분노와 실망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문민정부 이후에도 정권 말기가 되면 '홍삼 트리오' '소통령' '봉화대군' '형님과 왕차관' 등 크고 작은 부정부패'비리 사건이 터졌다. 하지만 지금처럼 국정의 위기를 넘어 국정 파탄 지경에 이른 경우는 드물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산불이 나면 초기 진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활활 타오르는 민심의 분노도 마찬가지다. 작금의 사태는 이미 '불통' 대통령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청와대 깊숙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속속들이 알 수는 없었지만, 국민과 여론은 "뭔가 이상하다. 상식적이지 않다"며 경고음을 보냈다. 대통령이 '눈빛 레이저'를 쏘고, 정부부처 국'과장을 대놓고 "참, 나쁜 사람"이라고 했을 때 '나라의 어른' 답지 않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다 최순실 일가 때문이었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4'13 총선 새누리당 공천을 두고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X망나니처럼 칼춤을 춰 댈 때. 국민들은 그 뒷배에 청와대, 즉 대통령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을 뒤에서 조정하는 최순실과 그 일당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현실에 직면한 지금 그저 아연실색할 뿐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최 씨 일가의 '깃털'(=행동대장) 노릇을 했다는 의혹은 국민적 자존심을 뭉개는 일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민은 4'13 총선을 통해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강력히 심판했다. 공천 파동 이전 압승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새누리당은 소수 여당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친박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민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사실상 친박 일색 지도부를 구성했다. 아무리 공정한 당내 경선 결과라고 하더라도, 민심과 동떨어져 있었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청와대와 당권을 장악한 친박이 힘을 합치면 차기대권 창출도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 같다. 심지어 최순실의 '대통령 연설문 수정'이라는 국정 개입-처음에는 국정 농단이라기보다는 국정 개입 의혹에 가까웠다-논란이 벌어질 때, 이정현 대표는 "나도 연설문을 쓸 때 친구 등의 조언을 듣는다"는 어처구니없는 말로 분노의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물과 기름을 분간하지 못한 것은 대통령과 청와대도 마찬가지였다. 안 한 것보다 못한 '90초짜리 사과 담화' 이후 일방적으로 김병준 총리 후보를 내정했다. 국민들의 "하야'탄핵" 외침에도 '불통의 리더십'을 고수한 셈이다. 민심이 더욱 악화되자, 지난 4일 두 번째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번에는 9분이 넘는 긴(?)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침통하게 울먹이는 박근혜 대통령을 TV로 보면서 국민, 특히 대구경북민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이러려고 박근혜 대통령을 맹목에 가깝도록 지지했나'라는 자책과 안타까움에 가슴을 쳤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대통령은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 같다. "국민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해 드리겠다는 각오로 노력해 왔는데…"라고 했지만, 국민은 수석비서관과 장'차관조차 독대하지 않으면서 대체 누구와 '함께' 노력해 온 것이냐고 반문한다. 또한 담화문에서는 검찰의 수사와 엄정한 사법처리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미 검찰은 늦장'눈치 보기 수사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고, 쏟아져 나오고 있는 최순실 일가와 그 일당들의 국정 농단 의혹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국민들은 생각하고 있다. 제기된 의혹의 일부에 대해 사법처리를 하더라도, 그게 전부가 아닐 거라는 의구심을 지우긴 어렵다는 말이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거대한 산불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뒤덮을 만한 '맞불'을 놓는 것이다. 대통령과 친박이 아직도 계속 국정을 주도하겠다는 발상은 거대한 불길 속에 머리를 들이미는 것과 다름없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제1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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