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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수상(隨想)] 노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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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청춘은 꽃이라 한다. 그러나 그 푸른 세월은 그렇게 길지가 않다. 꽃은 금방 지고 꽃 피던 시절도 끝나게 된다. 그렇다고 그리 슬퍼할 것까지는 없다. 꽃이 그냥 지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고 지니까.

청춘을 구가하는 젊은이가 꽃이라면 그다음 오는 장년은 열매의 계절이라 할 만하다. 장년 동안 열심히 땀 흘려서 열매를 알차게 키우고 익혀야 한다. 그 과정이 끝나면 비로소 노년이 찾아온다.

노년은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수확의 계절이다. 따라서 노인은 다 익은 열매와 같고 스스로를 추수하는 사람이다. 자기를 추수하는 사람! 스스로를 추수하는 일! 얼마나 멋지고 근사한가.

노인들은 삶을 끝까지 살아온 사람이다. 삶의 과정이 어떠했든, 평생을 살아낸다는 것은 그리 쉽고 간단한 일이 아니다. 노인들이 감내해 온 평생 속에는 온갖 번민과 수고와 눈물이 들어 있어 그 무게는 세상만큼 무겁다. 그러므로 늙었다는 의미의 노인은 없다.

세상에는 자기를 이룬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루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남을 이루게 함으로써 자신을 이루는 사람도 있다. 노인들이 잘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그런 역할이다. 노년에 이른 사람은 나름대로 세상에 대한 이해와 경험으로 지혜를 쌓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경륜과 식견을 이웃과 나누며 사회에 환원한다면 커다란 봉사가 될 것이다.

끝으로 졸시 한 편을 이 땅의 노년들을 위한 헌사로 바친다.

#저녁 해는 길다 / 박방희

저녁 해는 길다. 아침 해는 금방 떠오르고 저녁 해는 천천히 진다. 하던 일 마저 하라는 듯, 가던 길 마저 가라는 듯 저녁 해는 길다.

해가 산 넘어간 뒤에도 농부들은 밭을 열 고랑이나 더 매고 빨간 고추를 한 자루나 더 따며, 길손들은 저문 길을 십 리나 더 걸어 밤이 오기 전에 무사히 집에 도착한다.

저녁 해는 길다. 고추잠자리 낮게 내리고, 제비는 바람 없는 저녁 하늘 물살 가르듯 날아다닌다. 멍에 벗은 소는 이제야 풀을 뜯고.

아침 해는 떠올라 금세 나절이 되지만, 하루를 끝내는 저녁 해는 저리도 순하고 천천하다. 불그레한 석양은 세상을 포근히 감싸며 아름다이 적신다.

저녁 해는 길다. 소년의 하루에는 한 개의 해가 떠 하루를 살지만, 노인의 하루에는 여든 개의 해가 떠 그 하루에서 일생을 다시 산다.

저녁 해는 길다. 노년이 길듯이, 남은 날들이 알뜰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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