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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88! 빛나는 실버] 금(金):바라기예술단장 김종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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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 설움 달래주는 팔순의 '각설이 타령'

"덜 아픈 노인이 더 힘든 노인을 돌봐주는 것이 '노-노(老-老)케어'가 아니겠어요?" 팔순의 각설이 김종천 씨가 대구 시내 한 노인요양센터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각설이 공연을 벌이고 있다.
'금(金):바라기예술단'이 요양센터에서 위문 공연을 펼치고 있다.

67년 '파독 광부'로 이국서 고된 생활

지독한 향수병, 한국에 오니 싹 사라져

"남을 위해 살자" 다짐으로 무대에 올라

나보다 더 아픈 노인에 '벗'되고 싶어

사실 봉사에 나이는 의미가 없다. 은퇴한 70대 의사가 의료 봉사에 나서기도 하고 적십자 '4대 풍차사업'엔 80대 봉사자들도 많다. '착한 손'을 펼쳐 세상을 밝히려는 이들의 노력은 나이를 떠나 사회의 귀감이 된다.

보통 고령자들은 체력이나 신체의 한계 때문에 적극적인 봉사활동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상식을 깨고 팔순의 나이에 청년 못지않은 왕성한 공연 활동을 하는 어르신이 있다. 그것도 체력 소모가 무척 크다는 각설이 공연이다. 왜 하필이면 각설이일까. 공연 후 무대 아래서 듣는 그의 인생 이야기는 각설이 분장보다 더 흥미로웠다. 파독 광부, 섬유·기계 사업가에서 실버공연단장으로 바쁜 삶을 살고 있는 김종천(80) 씨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자.

◆신명 나는 각설이타령에 노인들 환호

11일 동구 신천동의 닥터김노인요양센터. '금(金):바라기예술단'의 위문 공연이 있는 날이다. 벨리 댄스, 하모니카 합주, 민요 공연이 끝난 후 김종천 씨가 각설이 복장을 하고 무대로 올라왔다. 김 씨의 걸쭉한 입담에 장내는 웃음바다가 되었다. 신명 나는 타령이 울려 퍼지면 환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춤을 추었다.

원래 춤을 잘 추고 무대 체질이었던 김 씨. 처음에는 동화구연이나 만담 쪽으로 공연활동을 했다. 기왕에 공연을 하는 거 좀 신나고 재미있는 것은 없을까 고민하다 각설이와 만담을 살짝 섞어 보았다. 그날로 객석은 뒤집혔다.

"그때부터 각설이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선생이나 학원도 없어서 인터넷 동영상을 틀어놓고 대사를 적어가며 하나씩 레퍼토리를 늘려나갔습니다."

이렇게 해서 김 씨만의 각설이타령이 완성되었다. 시내 각 병원에 순회공연을 다니다 보니 이젠 고정 팬들까지 생겼을 정도.

◆파독 광부 시절 향수병 걸려 자살 위기

영화 '국제시장'에서 온 국민의 눈시울을 붉게 만든 장면 중 하나가 파독 광부, 간호사들의 고생담이다. 이들은 매일 수천m 지하 갱도에서 탄가루를 마시고, 병원에서 시신을 닦으며 외화를 벌어 조국 근대화의 초석을 일구었다. 김 씨가 파독 광부를 지원해 뒤스부르크 광산에 배치된 건 1967년, 31세 때였다. 1천500m 지하 갱도의 온도는 보통 35~40℃. 그 깊이에는 공기가 부족해 산소를 주입하게 된다.

"공기가 들어오면 탄가루가 날려 앞뒤 분별이 되지 않아요. 지상에 올라올 때쯤이면 거의 까마귀가 되었지만 그래도 정말 행복했습니다. 한 달을 고생하면 공무원 40배 정도 월급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자신이 송금한 돈이 우리 집 살림을 일구고 조국 산업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도 큰 보람이자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머나먼 이국땅에서 고된 노동과 기계 같은 일상이 반복되면서 '불청객'이 찾아왔다. 지독한 향수병이 그를 덮쳐온 것이다. 안 먹고 안 입고 열심히 일하면서 통장에 돈은 쌓여갔지만 그만큼 그의 정신도 피폐해 갔다.

"2년쯤 되었을 겁니다. 잠자리에 누우면 갑자기 슬퍼지고 삶 자체가 부질없다는 생각이 밀려들었어요. 우울한 마음에 라인강을 거닐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수도 없이 방황했습니다."

밤마다 향수병'우울증이 엄습해올 때 그가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건 '그래, 죽더라도 한국에 돌아가서 거기서 죽자'라는 다짐이었다. 1971년 드디어 귀국길에 올랐을 때 그의 향수병은 씻은 듯이 나아버렸다. 비로소 정신을 차린 그는 이 죽음 같은 방황의 시간을 잘 견디게 해준 운명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지금부터 삶은 거저 얻은 생명이니 남을 위해 살자고. 지금 나이를 잊은 무대 열정은 그때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는 과정이다.

◆실버예술단 이끌며 봉사활동 전념

지금 김 씨는 대덕노인복지관의 '금(金):바라기예술단'을 이끌고 있다. 매주 1, 2회씩 지역의 요양원, 요양병원, 복지관을 다니며 공연을 하고 있다. 이 모임에는 대덕노인복지관에서 예능을 갈고닦은 20여 명의 단원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있다. 하모니카, 색소폰, 벨리 댄스, 전통춤, 각설이타령 등으로 이어지는 프로그램 내공도 탄탄하다.

어느덧 여든을 넘긴 김 씨. 항상 남과 더불어 웃으며 재능을 나누다 보니 아직도 체력은 건재하다. 여건이 되면 앞으로 5년 정도는 더 무대에 설 생각이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보건복지부장관상 이후 대구시장상(봉사상), 남구청장상을 잇따라 받았다.

"노-노(老-老)케어가 거창한 복지이론 같지만 결국은 덜 아픈 내가 더 아픈 친구들을 돌보고 말벗이 돼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노인 팬들 사이에서 각설이 분장을 지우던 김 씨가 밝게 웃으며 기자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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