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처음엔 머릿수나 하나 보태자는 심정이었다. 적어도 그 현장에서 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이 더 많으리라는 생각으로 아침 일찍 대절버스를 얻어타고 서울로 갔다. 각종 미디어를 통해 알려졌다시피 그날 광화문은 엄청난 인파로 가득 찼다. 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함성을 지르던 순간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언론에서 칭찬하듯 질서있는 집회를 가능케 한 것이 단지 빛나는 시민의식 덕분이었을까? 그날 많은 이들과 함께 바닥에 앉아 스크린을 보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바로 옆 고층빌딩 유리창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시선들을 보았다. 곧이어 목이 좋은 고층건물마다 셔터를 터트리는 카메라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광경은 그 자체로 이미 스펙터클함 그 자체가 되어 사건과 사실 그 자체보다 그를 둘러싼 담론에 더 초점이 모아지고 있었다. 집회의 목적보다는 그 규모나 폭력 여부, 시민의식과 같은 부차적인 일이 집회의 성격을 규정짓기 시작했다.
다음 집회를 위해 힘을 아끼자는 식으로 주최 측의 문화제 인사말을 뒤로한 채, 뭔가 모를 무력감에 숨이 막히던 나와 친구 몇몇은 청와대로 향하는 내자동 길목에 세워진 차벽에서 경찰들과 대치 중인 시민들을 발견하고 합류했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박근혜는 퇴진하라'와 같은 구호를 쉬지 않고 외쳤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 두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그대로였다. 답답한 마음에 앞으로 나아가 본 그 벽은 얇은 플라스틱에 철망으로 뒤를 받치고 있는 허접하기 그지없는 모양새였다. 답답함에 그 벽을 올라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을 만류하는 것은 경찰이 아니라 오히려 시민들이었다. '평화시위' '비폭력'을 외치며 그들에게 내려오라 호소했다.
사실 우리는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볼지, 무엇을 보여줄지를 선택한다. 그날 가장 오래 기억하고 싶은 것은 백남기 농민 상여 퍼포먼스 행렬이 앉아있던 시민들 사이로 지날 때의 장면이다. 쌀값 폭락과 고(故) 백남기 농민을 살인한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키겠다는 의지로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농민들이 무거운 상여를 들고 지나갈 때, 앉아있던 수백 명의 사람들이 다 같이 일어나 길을 냈고, 그 길을 따랐고, 그곳은 한참 동안 길로 남겨두었다. 그날 그곳에서 본 가장 감동적이고 광장다운 모습이었다. 앞서 말한 것들이 그날의 부정이 아니듯 아쉬움은 또 다른 다짐으로 더욱 뜨거워져야 하고, 더욱 깊어져야 할 것이다. 저항을 멈추지 말 것, 기꺼이 자리에서 일어날 것, 벽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라는 원칙 속에서 우리는 다음을 향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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