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랬으면 좋겠네
강연호의 '상처'
밑바닥 상처는 고요한 법이라고/ 나 어느 날 무심코 중얼거렸네/ (중략)/ 돌아보면 한 뼘도 못 되는 길을 걸어오면서/ 상처 아닌 상처를 들쑤셨더랬네/ 그 길의 상처에 빚 갚을 일 많았네/ 나 어느 날 강물 위 무수한 파문을 따라가다/ 무심코 중얼거림에 걸려 넘어졌지만/ 가슴 밑바닥 돌쩌귀처럼 박힌 상처는 꿈쩍도 않고 고요했네/ 이상하게 하나도 아프지 않았네.(강연호 '상처')
그랬네. 시간을 건너오면서 나는 시간이란 놈을 무척이나 원망했네. 그 시간 속에 함께 숨을 쉬었던 존재들도 더불어 원망했네. 빗방울처럼 많은 시간의 금들이, 그 시간의 금들만큼이나 많은 상처의 흔적들이 나를 지배했네. 그랬네. 그럴 때마다 나는 아프다고 소리쳤네. 빗방울들도 나에게 부딪치면서, 부서지면서 아팠을 텐데, 나는 내 아픔만 크다고 엄살을 떨었네. 사소한 아픔에도 소리치며 엄살을 떨었네. 엄살을 떨면서 빗방울들을 원망했네. 돌아보면 짧은 길 위에는 정착하지 못한 시간들이 여전히 방황하고 있었네. 나는 돌아갈 수 없는 길 위의 범죄자였네. 내 시간을 내 길 위에 제대로 그리지 못한 어리석은 범죄자였네. 내 아픔만 크고, 길 위에 정착하지 못한 시간들의 아픔은 외면했네. 내가 나를 외면하는 순간, 신기하게도 나 스스로도 아프지 않았네. 내가 길 위의 정착하지 못한 빗방울 같은 시간들을 지켜보는 순간, 나도 아프지 않았네.
그랬네. 사는 건 정말 쉬운 일은 아니었네. 저만치 길을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걸어온 길보다 더 많은 길이 남아 있었네. 이제는 숨을 고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올라온 길보다 더 높은 고갯길이 기다리고 있었네. 언젠가 누군가가 그랬네. 흘러가는 물은 강요하지 않아도 흐름에 따라 길을 만든다고. 하지만 언제나 무너지는 담벼락에 기대고 있다는 절박함으로 살기도 했었네, 불어오지 않는 바람을 기다리는 절실함으로 살기도 했었네,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상실감으로 살기도 했었네. 생채기가 남긴 옹이도 언제나 내 길 위에 있었네. 알고 보면 내 삶만이 아니라 모든 삶이 물 같지는 않았네. 이 세상에는 상처 없는 삶이 없다는 그것이 다소 나를 위로하기도 했었네. 기다림은 언제나 나를 지치게 했고, 그리움은 반복해서 나를 절박하게 만들었네. 그럴 때마다 다시 기대하면서 꿈을 만들었네. 내일 걸어가는 길은 오늘과는 다를 거라고 믿음이란 놈을 키웠네. 하지만 언제나 그 꿈의 끝은 만날 수가 없었네. 이따금 지금 길을 걷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 발버둥이 도대체 무엇인지 답답할 때도 많았네. 절박함이 절박함으로만 그치고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이 반복되었네.
나는 아무리 걸어도 닿을 수 없는 그 무엇에 닿고 싶었네. 그것이 기다림인지, 그리움인지, 사랑인지, 아니면 그 모두인지도 모르지만. 갑자기 '박하사탕'의 한 장면이 떠올랐네. 어느 낯설지 않은 강변에서 주인공 영호가 순임에게 쑥부쟁이를 꺾어 주면서 이 강변이 낯설지 않다고 하자 순임은 이렇게 말했네. "꿈을 꾼 것이겠지요. 그 꿈이 좋은 꿈이었으면 좋겠어요." 나도 그랬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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