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성실히 조사받겠다던 대국민 약속 어기고 피의자 된 대통령

박근혜정부에서 '비선 실세'로 행세하던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의혹을 수사한 검찰이 20일 최 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등 3명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했다. 특히 검찰은 최 씨와 안 전 수석의 범죄 사실에 '대통령과 공모하여'라고 적시했다. 박 대통령은 이제 헌법 사상 처음으로 피의자 신분이 됐다.

이들 범죄는 실로 어처구니없다. 그동안의 숱한 의혹이 사실이었다. 정상의 나라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다. 일반 국민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조차 없는 비리와 불법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비리와 불법이 나올지 알 수 없지만 이것만으로도 나라 꼴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먼저 일개 사인(私人)일 뿐인 최 씨의 국정 농단에 휘둘린 대통령의 어리석음 때문이다. 검찰에 따르면 대통령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실제 주인인 최 씨를 위해 53개 대기업으로부터 774억원을 거둬준 일에 공모했다. 물론 대통령을 대신해 안 전 수석이 나서 지난해 10월과 올 1월 출범한 두 재단에 주려 대기업 주머니를 터는 악역을 했다.

대통령은 또 각종 서류를 최 씨에게 보여주라고 지시해 180여 건의 문서가 밖으로 유출됐다. 명백한 공무상 비밀에 해당되는 장'차관 인선 등만도 47건이다. 최 씨가 절로 '비선 실세'가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최 씨를 위한 돈 모금은 안 전 수석, 문서 배달은 정 전 비서관에게 맡겼다. 국가 공무원을 수금원과 문서 심부름꾼으로 전락시킨 셈이다.

또 대통령을 검은 사복(私腹) 채우는 미끼로 쓴 최 씨는 말할 가치조차 없지만 최 씨 딸 정유라와 조카 장시호 등 최 씨 일가 농간에 놀아난 공직자와 이들 장단에 맞춰 잇속을 챙긴 관련자도 한심할 뿐이다. 여기에 뒷돈 주고 특혜나 대가를 기대하려 했을 대기업의 검은 속셈 역시 다르지 않다.

이제 피의자 대통령에게 남은 일은 분명하다. 대국민 약속인 검찰 수사 협조다. 그것도 스스로 검찰을 찾는 일이다. 더 이상 국민을 거리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 나락으로 추락한 국격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진실을 밝히는 결단으로 역사 앞에 서야 한다. 국정 마비의 장본인으로 괴롭겠지만 나라와 국민 그리고 스스로를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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