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아니 꺼질 수 없다. 매주 환히 밝힌 수백만 개 촛불의 의미를 안다면 그 생명력을 의심할 이유도 없다. 촛불은 국민이 맡긴 신성한 권력을 남용하고 국민을 모독한 무리로부터 권한을 회수하는 절차이자 망가진 국가 체제를 복원하라는 주권자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촛불은 단순히 민중의 외침이나 혁명의 목소리가 아니다. 헌법과 법률이 규정한 정의의 교정(矯正)인 동시에 바른 역사 회복을 위한 몸부림이다. 지금 이 땅의 국민은 대통령을 탄핵하며 지구상 그 누구보다 '헌법'과 '법률'을 깊이 상념하고 체화했다. 헌법에 비추어 권한을 위임받은 대통령과 공직자가 어떻게 본분을 어겼는지 밑줄을 치고 대조했다.
건성건성 넘겼던 헌법을 다시 들춘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헌법 전문은 압권이다. 우리가 '법의 법'인 헌법을 세우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이 법을 기초로 국가의 근원인 국민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명확히 적시했다. 헌법 전문은 평등과 자유,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십계명이자 금강경이다.
전문에 '우리 대한민국'이 아니라 '우리 대한국민'으로 그 주체를 명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1948년 처음 헌법을 만들고 8차에 걸쳐 개정하면서 법에 생명을 불어넣는 주체는 국가가 아니라 국민이라고 본 것이다. 이를 명기한 이유가 분명 있었을 것이지만 무심하게도 우리는 이를 놓쳤다. 풀어보면 국민은 국가와 국가권력의 처음이자 끝이라는 소리다.
반면 헌법이 명시한 국가와 국가기관은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의 안전과 자유, 행복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이자 그릇에 불과하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기대고 지향해야 할 목표는 국가주의가 아니라 국민주의라는 사실을 헌법은 환기시킨다.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의 말을 곰곰이 되새김한다. "국민이 가진 권력의 한계는 없다. 국민이 주권을 발동해 나올 때는 국민의 주권 행사를 재단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부정한 권력과 부패한 정치가 주객을 뒤바꾸었다. 그 결과 국민은 질곡과 고통의 수렁에 빠졌다. 민의와 국가의 틈에서 시스템이 매끄럽게 작동하도록 도와야 할 정치는 이미 오염될 대로 오염된 윤활유다. 1987년 체제 이후 30년간 정부와 국회, 정당은 윤활유 역할을 내팽개쳤다. 본분을 망각하고 시스템마저 망가뜨렸다. 탄핵 이후 정치가 어디로 나아가고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봉합이 아니라 절망한 민생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이것이 촛불의 목적이자 정치가 촛불을 뛰어넘어야 하는 이유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1일 탄핵 관련 성명에서 밝힌 "국가 대청소가 필요하다"는 말은 맞다. 하지만 국가 대청소의 첫걸음은 '정치 대청소'다. 그동안 정치가 국가를 어떻게 파탄 내고 오염시켰는지 국민은 잘 안다. 국가를 고작 출세나 권력 장악의 통로로 이용해온 정치꾼이 판을 쳤다는 사실만 두고 봐도 정치와 정치인 대청소는 피할 수 없다. 촛불에는 이런 국민의 염원과 각오가 담겨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팀에 수사팀장으로 파견된 윤석열 검사의 발언에 다시 주목한다. 그는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발언의 진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직에의 충성은 아니라는 말이다. 상하복명이 엄격한 검찰 조직에서 그는 이미 쓴맛을 봤다.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 과정에서 외압이 있다고 폭로해 좌천됐다. 결국 공직자로서 국민과 국가에의 충성을 강조한 것일 터다. 모름지기 공직자는 국민에 충성해야 한다. 공권력을 오용하고 게을리하면 되레 주인인 국민이 피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촛불은 '악마의 대변인'(Advocatus Diaboli)이기를 각오했다. 밝은 눈으로 국가 경영자를 고르고, 부정한 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하지 못하게 통제하겠다는 다짐이 바로 촛불이다. 촛불은 다시 묻는다. '국가의 주인은 누구인가' '국민은 무엇인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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