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경주의 시와함께] 나무도마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 가
  • 가

신기섭(1979~2005)

고깃덩어리의 피를 빨아먹으면 和色이 돌았다

너의 낯짝 싱싱한 야채의 숨결도 스미던 몸

그때마다 칼날에 탁탁 피와 숨결은 절단 났다

식육점 앞, 아무것도 걸친 것 없이 버려진 맨몸

넓적다리 뼈다귀처럼 개들에게 물어뜯기는

아직도 상처받을 수 있는 쓸모 있는 몸, 그러나

몸 깊은 곳 상처의 냄새마저 이제 너를 떠난다

그것은 너의 세월, 혹은 영혼, 기억들; 토막 난

죽은 몸들에게 짓눌려 피거품을 물던 너는

안 죽을 만큼의 상처가 고통스러웠다

중 략

상처가 깊을수록 도마는 살찐다. '쉽게 토막 나고 다져지던 고깃덩이들'이나 '싱싱한 야채의 숨결'들이 나무도마에 박힌다. 상투에 정복당할 수밖에 없는 아픔을 시인은 도마의 몸을 빌려 견뎠다. 세월을 조금 더 머금었더라면 어떤 생물이 되었을지도 모를 혹은 그 너덜너덜한 상처마저 절단 나 구체의 흔적이 되었을지도 모를 '나무도마'. 시인의 데뷔작은 때문에 여느 등단작들과 무게가 달랐다. 그리고 그 '불길한 예감'은 안타깝게도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아온 신인의 비보가 되어 돌아왔다. '삶의 이면에 도사린 슬픔의 시를 질리게 쓰고 싶다'던 시인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이제 누가 이 도마 위에 살을 끼얹어 줄 것인가. 가족이라고는 할머니 하나뿐이었던, 그 하나의 가족마저 떠나보내고, 시인은 혈혈단신으로 고시원에 틀어박혀 도마를 깎아왔을 것이다. 여기 주인을 잃은 도마가 있다. 도마가 숨 쉰다.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한미일 외교당국은 3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즉각 유선 협의를 통해 대응 방안을 논의했으며,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오전 북한 원산에서 발사...
현대캐피탈이 AI를 활용한 해킹으로 주택대출 모집인 146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가운데, 금융위원회는 4일 긴급 점검회의를 소집하여 금융업계...
부산 북항 친수공원에서 열흘 넘게 머물던 상어 '부캉이'가 3일 구조 당국이 설치한 그물을 넘어 다시 수로 안쪽으로 돌아왔다. 구조 당국은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의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 투자에 대해 조속한 합의를 요구하며 압박을 강화하고 있으며, 한국..
→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