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면 위로 드러난 사립학교법인의 비리는 학교 설립자의 자녀 등이 교사 채용을 미끼로 주도면밀하게 계획한 사건이었다. 해당 학교법인은 설립자의 3대 후손에 이르기까지 족벌 운영 체제를 유지했고, 학교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등 구조적 비리를 저질렀다. 이들에게 학교 설립 취지와 건학 이념은 뒷전이었다. 특히 교사 채용 비리에 전직 교사, 교장 등 교육계 인사들이 브로커로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자 교육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설립자 후손들이 범행 주도
최근 대구의 사립학교법인 두 곳에서 일어난 교사 채용 비리는 학교 설립자의 후손들이 깊숙이 개입한 사건이었다. 설립자 후손들은 돈을 받은 지원자들이 합격하도록 점수를 조작했고, 지원자들에게 받은 돈은 후손 및 재단 이사들이 나누어 가졌다.
이 사건의 중심은 경암교육재단의 전 이사장인 A(65) 씨로 작고한 재단 설립자의 셋째 아들이다.
A씨는 지난해 10~12월 재단 교사를 채용하면서 돈을 받고 9명의 합격자 명단을 미리 작성했다. A씨가 정한 '합격자 명단'은 자신의 큰딸이자 재단 소속 여고에서 행정실장으로 근무하는 B(35) 씨를 거쳐 교장, 교감 등으로 구성된 면접위원들에게 전달됐다.
면접위원들은 행정실장이 건넨 명단에 적힌 지원자의 면접 점수를 올려주는 등 재단의 입맛에 맞게 지원자의 점수를 조작했다. 그 결과 필기시험 성적이 최하위였지만 돈을 건넨 두 명은 거뜬히 합격할 수 있었다. 일부 과목에서는 필기시험에서 1~4위를 차지한 지원자들이 금품을 주지 않아 모두 탈락하기도 했다.
지원자들은 교사 지원 과정에서 브로커들에게 최소 1억3천만원에서 많게는 2억원을 전달했다. 재단은 이를 통해 총 14억3천만원을 챙길 수 있었다. 학교가 설립자 후손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셈이다.
수사 결과 재단 관계자들은 자신의 집에 5천500만원 상당의 현금을 5만원권으로 보관하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는 1억7천여만원이 입금된 계좌를 갖고 있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추가 추징금 환수를 위해 관련 계좌 및 재산을 철저히 추적해 추징보전명령을 청구할 계획이다"고 했다.
한편, 전 이사장 A씨는 뒷돈을 챙기며 자신의 혈육과 이를 나누는 모습도 보였다. A씨는 올해 1월 채용 대가로 받은 돈 가운데 각각 6천500만~1억원을 여동생 세 명에게 줬다.
검찰은 이와 함께 수성구에서 중'고등학교를 운영하는 사립학교법인 이사장 아들 C(42) 씨와 C씨의 중학교 은사 D씨도 구속했다. 이들은 2015년 10월~올해 2월 해당 학교 교사로 채용시켜 주겠다며 2명에게 모두 3억6천여만원을 가로챘다.
피해자들은 C씨의 아버지가 재단 이사장이라는 사실에 안심하고 돈을 건넸다. 하지만 이들이 교사 채용을 계속 미루자 검찰에 신고했다.
C씨는 현재 해당 학교법인에 이사 등 직함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아버지의 지위를 등에 업고 사기 행각을 벌였다. 임용 지원자에게 재단 이사장과 후손들의 권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직 교육자 출신도 범행에 참여
사립학교 교사 채용 비리 사건에서 눈에 띄는 것은 교육계 출신 인사들이 검은돈을 전달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경암교육재단 사건에서 전 이사장 A씨와 B행정실장에게 지원자의 아버지를 소개해 준 브로커들은 총 네 명이며, 이 가운데 세 명이 교사, 교장, 교육장 출신이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재단에 금품을 주고 채용된 교사 부모 중 일부도 교장 등 교육자 출신이었다.
수성구의 사립학교법인 이사장의 아들 C씨와 공모한 D씨 역시 대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청년 취업난이 극심한 상황에 교사 채용을 통해 불법적으로 이익을 챙기는 것을 엄단하겠다"며 "구직자를 울리는 취업 사기 사범에 대해서도 꾸준히 단속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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