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연(가명'33) 씨는 8개월 전 사별한 남편의 얘기를 꺼내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엄마 마음을 알 리 없는 두 살 난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엄마 주위를 맴돌았다. 가연 씨는 "TV 드라마에나 나올 일이 내게 벌어질 줄 몰랐다"고 했다.
결혼 생활 2년간 도박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남편은 가연 씨와 아들에게 빚을 남기고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신혼집에는 압류딱지가 날아들었고 도박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 있었다. "너무 슬픈데도 머릿속에는 '이 빚을 어떡하면 좋을까'하는 생각밖에 안 났어요."
가연 씨는 요즘 외출을 거의 하지 않는다. 우연히라도 바깥에서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봐 두려워서다. "저를 불쌍하게 여기는 시선이 괴로워요. 마치 제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도박에 빠진 남편이 남기고 떠난 빚덩이
2014년 9월, 결혼 4개월 만에 일이 터졌다. 남편이 지인과 사채업자에게 수천만원을 빌려 도박자금으로 탕진한 사실을 가연 씨가 알게 된 것이다. 추심업자들이 집으로 들이닥쳤고 남편은 가출해 연락을 끊었다. 뒷감당은 가연 씨의 몫이었다. 가연 씨는 급히 대출을 받아 남편의 빚을 갚았다. 소동이 마무리되자 남편은 "미안하다"며 빌었다. 가연 씨는 남편을 용서했지만 남편은 도박을 끊지 못했다. "그 후 4~6개월마다 같은 일이 반복됐어요. 일이 터져서 원금과 이자를 조금씩 갚다 보면 몇 달 뒤 또다시 빚 폭탄을 맞는 거예요."
보다 못한 가연 씨는 지난해 12월 남편을 도박치유센터에 보냈다. 직장까지 관두고 3개월 동안 치료를 받은 남편은 치료 경과가 좋아지자 올 2월 새 직장을 얻었다. 그러나 불과 두 달 뒤, 남편은 다시 한 번 도박에 손을 대 2천만원의 빚을 가연 씨에게 떠넘겼다. 한 달 뒤,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남편은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무책임하게 떠났다.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온 가연 씨를 맞이한 건 압류딱지였다. 남편에게 속한 빚은 상속포기로 면책됐지만 가연 씨가 남편의 빚을 갚으려고 빌린 돈 4천500만원은 가연 씨의 몫이었다. 신혼집 전세금을 빼 일부를 갚았지만 아직 1천만원이 남았다. "그렇게 힘들게 버텼던 결혼생활이 결국 이렇게 돼버렸네요." 가연 씨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머리 기울어진 아들, 치료 시기도 놓쳐
가연 씨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아이가 옹알이처럼 '아빠'를 말할 때 아빠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연 씨는 아들에게 일부러 '아빠'가 등장하는 동요는 가르치지 않는다. 아들 입에서 '아빠'라는 말이 나오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아들은 매주 한 차례씩 대학병원에서 사경 치료를 받고 있다. 사경은 목이 뒤틀려 머리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질환이다. 태어난 지 한 달쯤 지났을 무렵 아들은 오른쪽으로 목이 기울었다는 진단을 받았고 의사는 입원을 권유했다. 그러나 빚에 짓눌려 있던 가연 씨는 치료를 미뤘다. 석 달 전, 아들은 사경 치료를 시작했지만 경과는 썩 좋지 않다. 의사는 "치료 시기를 놓쳤다. 어쩌면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아들에게 사주고 싶은 걸 못 사주는 게 마음이 아파요." 아들은 장난감을 좋아하지만 집에는 변변한 장난감 하나 없다. 인근 어린이집과 아이를 키우는 친구에게서 아기 옷과 아기 용품을 얻어 쓰고 있다. 중고품 거래사이트에서 4만원 주고 중고 장난감을 딱 한 번 사본 게 전부다.
가연 씨는 내년 6월까지 집 근처에서 공공근로를 할 계획이다. 월급 110만원의 절반은 빚을 갚는 데 써야 한다. 그렇게 2년을 갚아야 남은 빚을 다 갚을 수 있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님께 더는 손 벌리지 않고 제 힘으로 살아야죠. 그렇지 않아도 저만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며 눈물을 쏟으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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