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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의 시와함께] 무등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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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1915~2000)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의 새끼들을 기를 수밖엔 없다

-중략-

봄날은 슬픈 눈꺼풀을 가진 병아리처럼 졸기 좋다. 시를 쓰기 위해 방을 얻고 시와 몇 가지 우정을 맺었다. 감정에 대해, 한적한 시간에 대해, 호밀에 대해, 사슴벌레에 대해, 까치발에 대해, 돌담에 갈겨 그려넣은 오줌발에 대해, 나는 시를 쓴다. 시를 쓰기 위해 그 방을 떠나기 전 잠시 사랑을 한다. "당신을 사랑하면서도 당신의 사라짐을 얼마나 내가 바랐던가요!"처럼.

숨어 있기 좋은 방에서 숨을 수 없는 시를 쓰는 일처럼, 상실에 대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친절뿐일지도 모른다. 상실에 대해 우리가 조금씩 친절해져가고 있다는 것은 삶이 외로워져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는 우리의 새끼들을 기를 수밖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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