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무형문화재, 10만 시간의 지혜] ②안동놋다리밟기 김경희 씨

"공주보다 놋다리 역할 더 많이 했죠"

경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안동놋다리밟기 예능보유자 김경희
경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안동놋다리밟기 예능보유자 김경희
안동놋다리밟기보존회 회원들이 놋다리밟기 시연을 하고 있다.
안동놋다리밟기보존회 회원들이 놋다리밟기 시연을 하고 있다.

1980년대 초등학교 운동회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차전놀이와 놋다리밟기였다. 남자아이들의 차전놀이와 여자아이들의 놋다리밟기는 그래서 연습도 많았다. 누가 동채에 오르는 대장이 되는지, 놋다리를 거니는 공주가 되는지도 관심사였다. '인생사의 족적이 될 것'이라 여길 정도로 그 나이 때는 대단한 것이었기에.

◆공주가 주인공이라고?

안동놋다리밟기가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건 1984년이다. 예능보유자 김경희 씨는 2004년 지정됐다. 1956년생으로 무형문화재 중 어린 편에 속한다.

김 씨는 공주 역할로 무형문화재에 지정됐다. 하지만 정작 공주 역할보다 놋다리 역할을 훨씬 더 많이 했다. 공주가 잘 걸어가려면 균형 감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길이 튼튼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내 임무는 공주를 맡은 이를 지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놋다리밟기의 주인공은 공주가 아니다. 단지 놋다리밟기 시연의 역할 중 하나"라고 했다. 민속놀이 행사 때 시연을 보이는 무리를 분석하면 공주 1명, 공주를 보좌하며 놋다리를 고르는 시녀가 6명, 그리고 놋다리가 35~40명이다.

1984년 놋다리밟기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됐을 때 가장 많이 알고 있었던 사람은 김순념(2002년 작고) 할머니였다. 현재 보유자인 김 씨는 당시 28살로 안동에서 전통무용 강사를 하고 있었다. 김 씨는 전수자 신분으로 놋다리밟기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에는 무형문화재에 대해 잘 몰랐다고 했다. 김 씨는 "내가 해야지 해서 시작한 건 아니다. 전통무용을 하니까 주변에서 추천한 거였다. 1989년 조교가 됐다. 2004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으니 입문 이후 20년 만에 보유자가 된 거다. 운이 좋았다"고 했다.

◆놋다리밟기도 한판 붙는다

김 씨가 놋다리밟기를 처음 접한 건 고등학교 때였다. 김 씨는 "안동 민속축제 때마다 놋다리밟기를 볼 수 있었다. 경안여상과 안동여고가 격년으로 시연했다. 경안여상이 지금 놋다리밟기의 모태가 되는 성밖놋다리, 안동여고는 공주가 1명인 성안놋다리를 보여줬다"고 했다.

성안놋다리는 안동역에서 웅부공원을 거쳐 안동보건소까지 이어지는 꽤 긴 거리였다. 시작과 끝이 있다. 성밖놋다리는 두 공주가 중간에서 만나 한판 붙는다. 육박전은 아니다. 공주는 균형을 잡고 있다. 놋다리들이 움직여 다리가 무너지면 지는 거다. 30분 남짓 걸린다. 학교 운동회 때 보던 다다닥 뛰는 놋다리밟기가 아니다. 공주는 '절대로' 뛰지 않는다.

공주 역할은 대체로 가볍고 작은 사람이 한다. 매년 4월 넷째 주 토요일 안동 웅부공원에서 '노국공주 선발대회'를 연다. 초등학생들이 주로 나선다. 30명 남짓 참가한다. 김 씨는 "걸음걸이, 민속퀴즈, 장기자랑 등으로 평가한다. 아이들에게 추억을 심어주려는 목적으로 여는 행사로 자리매김했다"고 설명했다.

◆소소한 역할이란 없다

사실 놋다리밟기에는 교본, 즉 매뉴얼이 없다. 상당수 예능 무형문화재가 그렇듯 실기가 곧 교본이었다. 김 씨는 "기록으로 남지 않은 것들이 많아 아쉽다. 앞으로는 남겨야 한다. 이건 내 의무다"라고 했다.

김 씨는 놋다리밟기의 원형을 유지하기 위해 힘쓸 것이라고 했다. 특히 김순념 할머니의 노래를 재현하는 데 전력을 쏟고 있다. 악보도 없는 노래를 30분 가까이 불러야 하기에 연습 외엔 답도 없다는 것이다. 인터뷰 중간에 청해 들어본 노래는 주술요 같기도, 민요 같기도 했다. 실 풀기 때 부른다는 노래는 동요 같기도 했다. 어느 것 하나 해석이 되지 않았다는 게 공통점이었다. 왜 악보로,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놋다리밟기를 통해 알게 된 지혜를 전해달라고 했다. 김 씨는 "놋다리밟기에 소소한 역할은 없다. 제각기 역할이 있는데 하나라도 허술해지면 와르르 무너진다. 놋다리 역할을 맡아 엎드려 있다고 무시할 게 아니다. 놋다리가 없으면 공주도 없다. 놋다리밟기에 참여하는 이들은 모두 안동문화 전수의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