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배낭 메고 세계 속으로] 페르시아문명을 찾아 (1) 이란 테헤란

사본으로 만난 함무라비법전, 佛에 뺏긴 안타까운 역사 느껴져

테헤란 최대 전통시장인 그랜드 바자르는 아치형 천장 형태로 이루어져 궂은 날씨에도 장을 볼 수 있다.
테헤란 최대 전통시장인 그랜드 바자르는 아치형 천장 형태로 이루어져 궂은 날씨에도 장을 볼 수 있다.
국립박물관 입구에서 만난 현지 학생들. 한류 바람으로 한국인 관광객을 보면 반갑게 인사한다.
국립박물관 입구에서 만난 현지 학생들. 한류 바람으로 한국인 관광객을 보면 반갑게 인사한다.
테헤란 지하철은 출퇴근 시간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하다(사진좌). 지하철 입구 벽에 쓰여 있는 반미 구호.(사진우)
테헤란 지하철은 출퇴근 시간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하다(사진좌). 지하철 입구 벽에 쓰여 있는 반미 구호.(사진우)

이란에 여행 간다니 대부분의 지인들이 위험한 나라에 왜 가느냐고 걱정한다. 심지어 IS를 조심하라는 눈물 어린 충고도 한다. 10여 년 전 쿠바를 갈 때 만류하던 지인들이다.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나를 본 터라 조금 안심하는 것 같지만 여전히 불안한 시선으로 걱정한다.

이란은 우리나라와 5시간 30분의 시차가 나지만 비슷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인구가 8천만 명 이상이며 면적은 한반도의 7배 이상이다. 원유 매장량도 세계 3, 4위를 다투지만 미국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경제 사정이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종교는 이슬람이지만 아랍어 대신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시아파 국가다. 시아파는 전 세계 이슬람의 10%에 불과하지만 이란은 국민의 90% 정도가 시아파를 믿는다.

수년 전부터 페르시아제국이었던 이란을 여행하고자 준비했고 일찌감치 항공권을 예약해 두었다. 갈 때는 부산-방콕-쿠알라룸푸르-테헤란으로, 올 때는 테헤란-쿠알라룸푸르-마닐라-부산으로 항공 노선을 복잡하게 잡았다. 제일 큰 이유는 항공료도 아낄 겸 여행 도중 각각 3일씩 따뜻한 태국과 필리핀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어서였다. 여행 일행은 3명으로 줄였다. 동행하려는 지인이 많았지만 냉정하게 잘랐다. 3명이 함께 여행하면 택시나 승용차를 이용할 때 복잡하지 않고 기동성이 좋다. 식당에 갈 때 가이드가 포함되더라도 한 테이블에 맞춰 식사가 나온다. 경비도 적당히 나눌 수 있어 경제적인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좀 더 편안한 여행을 위해 미리 이란 한국대사관에 문의하니 대사관에서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현지 가이드를 소개해 준다. 대사관이 이렇게 친절하게 가이드까지 소개해 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8시간을 날아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도착했다. 이란은 술을 금기시하는 나라다. 애주가인 필자와 일행들은 여행 동안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생각에 기내에서 조그만 양주 4병과 맥주 8병을 비워 버렸다. 1시간 연착해 이맘호메니 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에 가까웠다. 가이드로 나온 현지인의 이름은 알리. 37세인 그는 부인과 5살 딸을 둔 가장으로 우리 일행들이 놀랄 정도로 한국어가 유창했다. 알리는 여행 기간 내내 24시간 동행하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미리 호텔을 부탁했었는데 테헤란 시내에 있는 호텔을 구해주었다. 40달러 정도의 가격에 훌륭한 호텔을 얻어 기분이 좋았다.

기내 음주, 긴 항공시간, 시차 탓으로 아침 일찍 무거운 몸을 이불 속에서 꺼냈다. 일행들은 아직 기척이 없다. 호텔 로비에서 지도를 살펴보니 인근에 지하철역이 있다. 호텔에서 걸어서 5분 거리. 지하철 입구 벽면에 'DOWN WITH USA'란 선명한 글귀가 보여 이란에 온 것을 실감했다. 저렴한 금액에 티켓을 구입해 지하로 내려가니 출근 시간이라 사람들이 붐빈다. 남성, 여성 칸이 따로 나뉘어 있다. 승차하려고 두 번이나 시도했지만 튕겨 나왔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어 마치 콘크리트벽을 치는 느낌이다. 꼭 출근해야 하는 이란인들과 달리 나는 절박함이 없었다. 주위에서 지켜보는 현지인들의 시선에 애처로움과 재미있다는 표정이 번갈아 나타난다.

오전에는 국립박물관으로 향했다. 국립박물관은 역사박물관과 이슬람박물관 2개 건물로 나뉘어 있어 입장료를 따로 구입해야 한다. 역사박물관은 붐볐지만, 이슬람박물관은 한산했다. 견학 온 중고등학생들이 우리 일행을 보자 손짓하며 법석을 뜬다. 한류 바람으로 한국인 관광객을 보면 반갑게 인사한다. 역사박물관은 2층으로 유물을 시대별로 전시해 놓았다. 고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인 페르세폴리스 유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유명한 함무라비법전 사본이 눈길을 끈다. 원본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어 이란인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에 갔는데 TV에서 상가건물 붕괴로 수십 명의 사상자와 실종자를 낸 사고현장이 흘러나온다. 가이드를 졸라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에 다가갈수록 하얀 연기와 먼지가 자욱하다. 입구는 경찰들이 모두 봉쇄, 필요한 차량만 접근을 허용한다. 급한 김에 알리에게 한국서 온 저널리스트(?)라 소개하고 취재를 허용해 달라고 부탁했다. 관계자는 멀리서 사진만 촬영하라고 한다. 사진 몇 장을 찍자 다른 경찰관이 촬영 중지를 요구하며 카메라를 뺏어간다. 다짜고짜 촬영한 영상을 모두 지워 버린다. 알리가 설명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거의 쫓겨나다시피 현장에서 나왔다. 현장을 빠져나오면서 빠른 복구와 희생자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테헤란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인 그랜드 바자르로 갔다. 여행할 때마다 전통시장을 꼭 찾는 이유는 서민들의 모습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아치형 천장 형태로 이루어진 시장의 규모는 엄청나다. 좁고 번잡한 골목 사이로 물건을 실어 나르는 손수레가 부딪치지 않고 비켜가는 모습이 이채롭다. 카펫 상점들이 많고 향신료 가게에도 손님들이 북적인다. 워낙 규모가 커 전부 둘러본다는 것은 일정상 무리였다. 도중에 빠져나와 이란 중부의 고도인 이스파한으로 향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