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절차적 정당성' 없는 특검 연장법 직권상정 요구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등 야 4당이 추진하는 특검 연장법안의 국회 처리가 사실상 무산됐다. 여당인 자유한국당의 완강한 반대로 여야 합의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법안 처리의 마지막 수단인 국회의장 직권상정도 정세균 의장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정 의장은 지난달 28일 야 4당 원내대표의 직권상정 요구에 "상임위원회 발의도, 본회의 보고도 되지 않은 법안을 직권상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못박았다.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의 권성동 위원장도 "역대 특검 도입은 여야 원내대표 합의로 발동됐다. 새로운 특검법 역시 합의가 있어야 한다"며 같은 뜻을 밝혔다. 여야 합의가 없으면 새 특검 법안을 직권으로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연한 결정이다. 법안 처리는 국회법이 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정 의장이 지적한 상임위원회 발의와 본회의 보고가 바로 그것이다. 이를 건너뛰는 방법이 직권상정이다. 그러나 이는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국회의장이 각 원내교섭단체 의원과 합의하는 경우 등으로 엄격히 제한되어 있다. 특검 연장법안 처리가 이들 세 가지 요건 중 하나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정 의장이 직권상정을 거부하자 "국정은 대통령 직무 정지로 공백 상태이고, 권한대행이 멋대로 월권해 삼권분립과 법치 근간을 훼손하는 지금이 국가비상사태가 아니고 뭐라고 하겠는가"라며 직권상정을 다시 요구했지만 동의할 수 없다. 직권상정 요건 중 '국가비상사태'는 "전시'사변에 준하는"이란 전제가 붙어 있다. 과연 지금이 전시나 사변에 준하는 상황인가? 그런 식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제 편한 대로 해석하면 종국에는 국가비상사태가 아닌 상황이 없게 될 것이다.

특검 연장법안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국회에서 처리하려면 정해진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절차적 정당성'이다. 절차적 정당성이 무너지면 민주주의도 무너진다. 야당은 정 의장과 권 위원장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 그도 아니면 여당과 합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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