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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나는 특별하다는 생각

학교 다닐 때 선배와 아파트에서 같이 살았다. 아파트 주인은 다른 선배의 동생이었고 출생 계층으로 치면 은수저였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자기 명의의 아파트라니 살짝 부럽기도 했지만, 전세를 얻을 형편이 된다는 것도 큰 혜택이니 부모님께 감사할 일이었다. 계약 연장이 문제였다. 전세비를 올려달라고 했다. 그 당시 나는 세상 물정을 몰랐고 몰라도 큰 지장이 없었다. 전세비를 올리다니, 더구나 아는 사인데, 주인이랍시고 따로 한 일도 없으면서! 나는 몹시 불쾌하고 화가 났다. 그것을 옆에서 보던 선배가 한마디 했다. "너는 다른 것에 화를 내는 것 같다"고.

나와 비슷한 연배고, 아직 한참 어리고 집을 가지려고 땀 흘린 적도 없고, 급전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동네 집값 뛴다고 덩달아 올려달라는 심보도 그렇고, 슬쩍 걸치기만 했지만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그것을 전혀 배려할 생각은 없고, 자기 권리만 안중에 있는 그 집주인, 그 아이가 밉다고만 생각했다. 횡포를 부린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내게. 내가 뭐? 화의 근원에 또 내가 있었다.

내게 이럴 수 있느냐는 그 생각이 우스꽝스럽다는 것을 선배의 지적이 없었더라면 자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갑과 을의 관계, 계층의 격차, 노동과 결과물의 관계, 학연'지연에의 유혹, 그런 요인들은 사실 공식적인 것이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느냐는 치졸한 자기중심적 사고가 화의 직접 요인이었다. 나는 특별하므로, 나처럼 세상에 해 끼치지 않고 사는 사람에게 세상 세법을 들이대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 내 이십 대의 수준이 그 정도였다. 나는 특별하다. 그러니 나는 특별한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는 발상은 근거 없는 특권의식이고 어리광이었으며 미성숙한 시절의 단상이었다. 내가 특별하다는 숨은 자의식이 수면으로 올라온 희귀 장면이다.

이해하려고 애를 쓰고 쓰다가 여기까지 왔다. 나처럼 평범하고 평범한 인간도 스스로 특별하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고 그런 잠재의식이 사실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살다 보면 너나없이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들이며 나도 그 중 하나일 뿐임을 알게 된다. 자신을 공주라고 생각하면서 평생 살아온 자의 자기애는 얼마나 각별할까. 심지어 마마를 외치면서 읍소하는 21세기 백성이 있으니 그이에게 자기성찰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삶이 던져주는 그 기회를 공주가 마다한 것은 아닐까. 지금 나는 검찰로 들어가는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글을 쓴다. 특별한 예우와 혜택과 권력이 주어진 만큼 무거운 책임이 주어졌을 테니 늘 자기반성과 평가를 통해 부단히 겸손하고 성장했어야 할 자리였다. 특권의식이 중심에 있으면 안 되는 자리였다. 권력을 입맛대로 휘두르면 안 되었다. 적어도 이 순간 많은 사람은 아직 끝나지 않은 동시대 어두운 상징 하나가 누구나 법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것을 철저하게 각성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기회를 맞이하길 기원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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