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北 억지 통했나…김정남 화장처리 '증거 인멸' 수순

말레이 언론 "26일 화장장 옮겨져…北 특사에 전달 예상"

이역만리에서 억울하게 죽은 북한의 '비운의 황태자' 김정남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지난달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맹독성 신경가스제인 VX로 피살된 것이 분명한 김정남은 말레이와 북한 간의 타협 과정에서 진상 규명도 못 한 채 화장돼 한 줌의 재로 뿌려질 가능성이 커졌다.

말레이 당국은 그동안 주권이 걸린 사안이라며 김정남 암살 사건을 수사해 왔으나, 북한의 방해와 중국 등의 비협조로 북한 소행이라는 물증을 확보하지 못하자 서둘러 사건을 마무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말레이의 중문 매체 중국보(中國報)는 27일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김정남의 시신이 전날 오후 쿠알라룸푸르 외곽의 화장장으로 옮겨졌으며 시신을 화장한 뒤 북한 측 특사에게 전달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말레이는 물론 북한 당국이 이와 관련해 가타부타 확인하지 않고 있으나, 쿠알라룸푸르 현지에선 김정남 시신이 이미 화장됐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를 바탕으로 양국이 협상을 벌여 화장한 시신 인도 문제를 포함한 김정남 암살 사건 마무리 절차를 밟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사실 김정남 시신 처리를 두고 갈등과 대립을 거듭했던 말레이와 북한은 화장 처리가 최선의 방법일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북한 소행임을 구체적으로 규명하지 못한 말레이로선 시신을 인도받은 북한이 재부검을 통해 억지 주장을 하게 된다면 곤혹스러울 수 있고, 북한 역시 시간을 끌다가 국제사회의 관심만 키워 제재의 강도가 세질 것을 우려하고 있어서다.

사건을 조속히 마무리하려는 북한과 차후 딴소리를 차단하려는 말레이가 선택할 최선의 방법이 화장 처리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말레이 당국은 그동안 김정남 암살을 실행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여성을 조사해 왔으나 북한의 배후를 구체적으로 규명하지 못한 상황에서, 김정남 시신을 북한에 넘기는 걸 꺼려온 게 사실이다. 이미 부검을 통해 김정남이 화학무기로 분류되는 VX 신경작용제에 살해됐다고 규명한 결과마저 부정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말레이 당국은 중국 등 관련국에 협조를 요청해 진상 규명을 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유일하게 체포했던 북한 국적자 리정철은 증거 불충분으로 풀어줘야 했으며, 현광성 등은 치외법권 지역인 북한대사관에 은신해 있는 바람에 강제 수사를 진행할 수 없다는 점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차후 수사를 지속한다고 하더라도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한 말레이로선 그나마 밝혀낸 암살사건의 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시신 재부검 방지를 위한 화장 후 인도 방법을 택하는 한편 그걸 계기로 북한에 억류 중인 자국인 7명을 인도받는 협상을 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북한 입장에서도 핵심 증거인 김정남 시신 화장은 나쁘지 않은 결과다.

북한 당국은 김정남 암살 직후부터 시신 부검을 차단하면서 화장을 요구해왔다. 무엇보다 증거를 없애려는 의도였다고 할 수 있다.

김정남의 사인이 밝혀지기 전이었던 당시와는 상황이 다르지만, 시신 화장을 통해 이번 사건의 여파를 최소화할 수 있어 북한 역시 수용했을 공산이 커 보인다.

북한은 이번 사건이 어떻게 종결되든 간에 그동안 해왔던 것과는 마찬가지로 김정남이 아닌 김철 사망 주장과 더불어 VX 사망이 아닌 심장마비사라고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말레이 경찰 당국이 26일 치외법권인 북한대사관 방문조사를 통해 그곳에 은신 중인 현광성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과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 리지우 등 용의자 3명을 조사한 것도 이번 사건의 마무리 수순 밟기일 수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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