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1970, 80년대 초교를 다녔다면 '국민교육헌장'을 기억할 것이다. 교실 전면에 크게 붙여 놓은 헌장을 달달 외우지 않으면 선생님에게 혼쭐이 났다. 첫 글자부터 마지막 '1968년 12월 5일 대통령 박정희'까지 393자나 되다 보니 어린 마음에 '왜 이렇게 길까'하며 투덜대던 기억이 난다.
한때 '우리는 명문대 입학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선배의 빛난 입시 성적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는 이기주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는 친구 타도에 이바지할 때다'는 패러디가 유행했고, 노래로 바꿔 부르는 이도 있었다. 후배가 노래방에서 그 긴 노래를 불러대면 동석자들은 재미있어하며 이런 말을 던졌다. "기억력이 좋네."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어릴 때 교육은 평생을 간다'는 말을 실감한다. 철모르는 시절에 강제로 주입받은 교육'사상은 개인의 인격'가치관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민교육헌장'은 '유신 독재의 잔재'라는 비판 속에 1994년 교과서에서 사라졌지만, 기성세대에게는 '민족중흥' '역사적 사명' 따위의 편린을 뚜렷하게 남겨 놓았다. 흔히 국민교육헌장은 일제의 '교육칙어'를 모방했다고 비판받지만, 둘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국민교육헌장은 개방 사회와는 맞지 않은 개념이지만, 자구만 뜯어보면 큰 흠결은 없다.
그렇지만, 교육칙어는 교육이란 가면 속에 일왕을 신격화하고 국민을 복속시키려는 무시무시한 이데올로기다. '짐이 생각하건대 천조(天祖)가 나라를 세워 넓고 원대한 덕을 베푼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우리 신민(臣民)은 충과 효를 다해…'로 시작하는 칙어(勅語)는 국민의 의식세계를 철저히 장악해 전체주의로 나아가겠다는 선언이다.
교육칙어에 저항한 인물은 무교회주의 창시자인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1861~1930)다. 1891년 도쿄 제일고등중학교(현 도쿄대학) 교사 시절, 교육칙어 봉독식에서 '교육칙어에 절하면 메이지 왕을 신으로 인정하는 것'이라며 혼자 절을 하지 않았다. 반역자로 몰려 온갖 박해를 받았지만, 끝까지 신념을 꺾지 않았다.
얼마 전 아베 신조 총리가 '교육칙어'를 학교에서 다시 가르치겠다고 밝혔다. 21세기에 일왕 신격화와 군국주의 정신을 되살리겠다니 어이가 없다. 이럴 때마다 '총리가 정신병자는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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