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醫窓] 수수께끼 인생

같은 장기에 발생한 같은 종류의 암이라도 사람의 성격만큼이나 성질이 다양하다. 이를 두고 생물학적 다양성 또는 이질성이라고 한다. 성질의 차이를 일으키는 원인은 뭘까. 어떤 유전자가 어떠한 경로로 암을 일으키고 성질을 결정하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가족성 혹은 유전적 성향이 있는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처럼 종양의 이질성은 유전자의 차이와도 관련이 있다. 전문가들은 암 성질이 다양한 원인을 찾는 과정이 바다에 빠트린 바늘을 찾는 것만큼 난해하다고 이야기한다.

최근 암 성질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사례를 경험했다. 담낭암으로 수술 의뢰를 받은 65세 여성이었다. 양전자 방출 단층 CT 촬영을 해 보니 암 세포가 간으로 직접적으로 침투했고, 간 안쪽과 주변 림프절은 물론 십이지장과 대장까지 침윤된 담낭암 4기였다. 절제 수술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런 경우 항암화학치료도 해보지만 반응률은 미미하다. 기대 여명은 대략 3~6개월 정도다. 6개월 내에 대부분 사망한다는 뜻이다.

환자와 가족들에게는 "수술은 불가능하지만 항암치료를 해보고, 줄어들면 그때 가서 수술을 고려해 보자"고 설명했다. 이런 경우 "아이고 이제 세상에 미련 없어요. 그냥 갈랍니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여성은 어린이처럼 고개를 내밀며 "교수님이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미소를 지었다.

혈액종양내과에 항암화학요법 치료를 의뢰했다. 대부분은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암이 진행돼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사망하기 때문이다. 5개월이 지났을까. 혈액종양내과 교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에 보내주셨던 환자분의 암이 굉장히 많이 줄어들어 이제 수술 가능한 상태입니다. 검토해 보시고 수술하시지요." 그때 동행했던 가족들과 함께 진료실에서 다시 만났다. 정말 몰라보게 좋아졌다. 간으로 전이됐던 종양이 사라졌고 십이지장과 대장으로 침윤된 부분도 분리돼 수술이 가능해 보였다. 그는 여전히 맑은 미소를 띠며 "이제 수술 되겠지요? 수술하면 살 수 있지요?"라고 잔뜩 기대했다.

마침내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 중 간내 초음파를 다시 봐도 전이된 종양이 보이지 않았고 인근 장기로 침윤도 없었다. 우측 간 동맥에 침윤된 암 때문에 우측 간의 절반 이상을 절제했고, 담낭과 주변 림프절까지 병소를 완전히 도려낼 수 있었다. 좌측 담관에 소장을 연결하는 재건 수술까지 7시간이 넘는 수술 시간 내내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큰 성취감과 감사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환자는 며칠 내로 퇴원할 만큼 회복됐다. 병실에서 손을 덥석 잡으며 서로 감사의 인사를 나눴다. 병실을 나서며 "통상적이었다면 더 이상 세상 빛을 보지 못했을 텐데. 수수께끼 인생"이라고 혼자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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