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대선 후보가 '3D 프린터'를 '삼디 프린터'로 말한 것이 며칠 동안 정치권의 논쟁거리가 되었다. 아마 이의를 제기한 측에서는 "'3D 프린터'를 '삼디 프린터'로 읽는다=무식하다=대통령의 자격이 없다"를 부각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말에 동조하다 보면 6σ, f(2), F-16 등등 숫자가 들어간 말을 아무 불편함이 없이 읽었다가 갑자기 덫에 빠진 느낌을 받게 된다. 그냥 '육 시그마', '에프 이', '에프 십육'으로 읽어도 아무 문제가 없던 것이 갑자기 헷갈리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사실 숫자로 된 것을 어떻게 읽어야 한다는 원칙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영어와 결합된 것은 영어로 읽고, 우리말과 결합된 것은 우리말로 읽어야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것도 정확하지 않다. 앞의 예에서는 영어와 결합되어 있지만 우리말로 읽은 것을 더 많이 쓰는 경우도 있고, 예전에 미도극장 같은 재개봉관에서 보았던 영화 '애마부인4', '산딸기6'을 '애마부인 포', '산딸기 식스'로 많이 읽었던 것을 보면 그 견해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신 10을 넘어가는 숫자들은 대체적으로 우리말로 읽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그 나름 법칙이라면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예비군 훈련을 받을 때 사용했던 'M1' 소총은 '엠 원'으로 불렀지만 'M16' 소총은('에무 식스틴'이라고 발음하던 우리 중대 인사계 빼고는 대부분) '엠 십육'이라고 불렀다. 영화에서 람보가 한 손으로 들고 쏘던(우리가 그 자세로 있으면 얼차려가 되던) 자동 소총 'M60'은 '엠 식스티'나 '엠 육십' 대신에 주로 '엠 육공'으로 불렀다. 영어로 읽다가는 말이 불필요하게 길어지기 때문이다.
숫자를 영어로 읽을 때는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3과 4를 읽을 때 영어로 읽는다면 'three'에 있는 번데기 발음이라고 불렀던 [θ ]와 [r] 발음, 'four'에 있는 [f] 발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 고민은 된다. 정직한 한국 발음으로 '쓰리', '포'라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기초적인 영어 발음도 모르느냐고 트집을 잡을 것 같아 찜찜하다. 또 5G의 5는 순서를 나타내는 말이기 때문에 '파이브'가 아니라 정확하게는 '피프쓰'(fifth)인데, 그렇게 발음하려니 왠지 어색하다.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에서 규칙으로 정해 놓은 것은 [θ ] 발음을 쓸 때는 'ㅅ'으로, [f] 발음은 'ㅍ'으로 쓴다는 것밖에 없다. 그래서 바퀴 세 개 달린 자동차를 말할 때나 야구에서 팔 각도를 약간 내려서 던질 때 '쓰리쿼터'(three quarter)로 쓰지 않고 '스리쿼터'로 쓴다. 마찬가지로 family는 '훼밀리'라고 쓰지 않고 '패밀리'로 써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3을 '삼'으로 읽느냐, '쓰리'로 읽느냐를 가지고 논쟁을 하기 전에 '쓰리'를 어색하기는 하지만 '스리'로 써야 한다는 것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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