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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 내 마음의 안식처] (7)이형수 문인화가-영덕 인량마을 충효당

문인화가 이형수의 안식처인 영덕 인량마을 충효당.
문인화가 이형수의 안식처인 영덕 인량마을 충효당.
이형수
이형수

뒷산 가득 빽빽한 금강송…200년 된 고택 오밀조밀

도토리 주워 죽 끓이던 할머니 장계향 모습 그려져

"아름답고 영롱한 유년의 추억으로 힘든 삶을 위안해 왔다. 나무가 뿌리 힘으로 거센 바람을 견디듯 붓 한 자루는 내 삶의 깊은 뿌리였다."

예순을 넘기고서야 조금씩 알게 됐다. 그에게 그림은 유년의 추억이다. 유년의 추억은 불현듯 떠오르는 각인이다. 유년의 살갗에 새겨놓았던 고향은 저승꽃 필 무렵에도 판화처럼 그대로다.

주변의 이웃을 찾아, 삶 속의 문인화를 그려오던 이형수 작가가 고향 마을인 영덕 인량마을을 찾았다. 삶의 마무리를 하려는 연어처럼 그도 송천을 거슬러 고향 마을에 닿는다.

그의 쉼터는 영덕 인량마을 충효당이다. 뒷산 가득 빽빽한 금강송이 동해안에 가까운 영덕임을 알린다. 충효당은 인량마을의 여러 종택 중 하나다. 재령 이씨 영해파 종택이다. 운악 이함이 지었다.

충효당에서 그는 품 넓은 할머니 장계향(1598~1680)을 떠올린다. 75세에 지은 '음식디미방'의 저자로 더 알려진, 그러나 작가에겐 한량없이 넓은 마음의 할머니인 장계향은 43세 때 영양 두들마을로 분가하기까지 충효당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는 장계향의 흔적으로 미뤄 짐작되는 것들이 뿌려져 있다. 재령 이씨 후손들을 비롯해 향토연구가들의 상상은 대체로 일치한다. 400년 전 운악이 심었다는 충효당 서편 은행나무 아래에서 장계향이 도토리를 주워와 죽을 끓였을 모습도 그중 하나다. 작가도 그렸다. 은행나무 아래 은행 냄새 물리치며 떫은 향 도토리묵으로 배를 채우던, 전란의 백성들이다.

작가의 안식처는 충효당에 한정되지 않는다. 인량마을은 8성씨 12종가가 집성촌을 이루는 곳이다. 원조 다툼이나 텃세와 거리가 멀다. 프로야구 연고지로 비유하면 쉬울까. 서울 잠실야구장을 다섯 개 구단이 함께 쓰면서도 알력 다툼 한 번 일지 않은 곳이라 보면 거의 맞다.

길게는 500년 이상, 짧게는 200년 정도의 고택이 오밀조밀, 각자 나름의 공간 여유를 갖고 자리 잡고 있다. 용암종택, 오봉종택, 갈암종택 등은 원형도 잘 남아 있다. 어느 하나 '내가 잘났소' 하는 모습이 없는 어우러짐이다.

유교적 가치를 지닌 건축물과 종택이 몰려 '작은 안동'이라 불린다는 인량리는 여러 성씨가 어울려 살아온 땅이다. 관용과 포용의 장이라고 불러도 좋을 인량리를 노년에 접어들 즈음의 작가가 초심, '유년의 기억'을 갖고 다시 찾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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