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해장은 1919년 3월 장날에 독립만세를 불렀던 바닷가에 인접한 시골장터이다. 예로부터 수산물을 내륙지방(안동, 영양, 청송 등)으로 공급했던 최대 규모의 장터였다. 지금의 장터는 2002년 시장현대화 사업을 통해 새 단장해 상설시장과 5일장이 함께 어우러진 전통시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람들의 모임이나 북적임은 예전 같지는 않지만 장날(5일, 10일)이면 지역주민은 물론 전국의 관광객들이 싱싱한 수산물을 얻기 위해 몰려온다.
황복만(76) 씨는 영해 장터에서 평생을 국수 장인으로 살아왔다. 평해에서 태어난 황 씨는 서른 살의 나이에 울진군 온정면이 고향인 꽃다운 처녀 김수연(72) 씨와 혼인해 2남 1녀를 낳았다. 가난으로 먹고살 길이 막막했던 황 씨는 궁리 끝에 국수 만드는 일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마침 인근에서 국수공장을 하는 친척의 도움으로 국수 제조기술을 배웠다.
온 식구가 한집에서 살던 시절에는 먹을거리가 풍족하지 못해 국수와 수제비 등 밀가루 음식을 많이 해 먹었다. 국수를 만들면 당일에 물건이 동나는 일이 많았다. 수작업으로만 만드는 황 씨의 국수는 면발이 쫄깃하고 식감이 좋다. 제조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일은 건조작업이다. 여름에는 자연바람으로 2일만 말리면 상품으로 내놓을 수 있다. 비가 오면 건조작업을 할 수 없어 장마철은 비수기로 들어간다. 봄, 가을에는 실내에서 건조하는데 보통 5일 정도가 소요된다. 생산성은 여름이 가장 좋다. 겨울에는 아예 국수를 만들지 않는다. 국수가 잘 마르면 일정한 길이로 잘라서 종이로 포장한다. 옛날에는 절단 작업을 작두로 했다. 부스러기가 많이 나와 요즘에는 큰 칼로 일일이 손으로 자른다. 이처럼 수작업으로 여러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국수 제조는 힘든 일이다. 황 씨는 세월이 지나면서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고 한다. 함께 국수를 손으로 만들던 사람들은 모두 그만두고 황 씨 한 사람만 남았다.
"늙고 주름만 늘었지만 40여 년 동안 국수를 만든 세월이 자랑스럽습니다." 황 씨의 푸념 속에는 한평생 국수를 만든 자부심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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