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차재원 새論 새評] 유승민과 '소명으로서의 정치'

부산대 졸업. 영국 엑시터 대학 국제학 석사. 전 국제신문 서울정치부장. 정의화 국회부의장 비서실장
부산대 졸업. 영국 엑시터 대학 국제학 석사. 전 국제신문 서울정치부장. 정의화 국회부의장 비서실장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책 발간

대선 과정 보수개혁 도전장 던져

바른정당은 후보 중도사퇴 요구

유 후보, 정치 소명 다할지 관심

지난달 초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이하 존칭 생략)가 정치 에세이를 펴냈다. 자신의 정치 행보에 대한 소감을 밝히는 글쓰기는 정치 입문 18년 만에 처음.

"말과 글은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다. 특히 자신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그래서 두려운 일이다."(프롤로그)

그럼에도 세간의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정작 주목되는 것은 책의 제목이었다.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이 말은 유승민 정치를 읽어내는 핵심 키워드이다. 실제 이 질문을 공개적으로 던질 때마다 그 자신은 정치적 격동에 휘말려야 했다. 덩달아 한국 정치도 요동쳤다.

지난 2015년 4월 8일 유승민은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국회 연설에 나섰다. 먼저 대통령이 주장한 '증세 없는 복지'를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다"고 직격했다. 대안으로 '중부담-중복지'를 제시한 뒤 증세 방침을 시사했다.

"가진 자가 더 많은 세금을 낸다는 원칙, 법인세도 성역이 될 수 없다는 원칙 등을 고려해 세금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당을 친서민으로 분명히 '좌클릭'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우리 당은 가진 자, 기득권 세력, 재벌'대기업 편이 아니라 고통받는 서민'중산층 편에 서겠다." 여당 의석에서 웅성거림이 커질 때쯤 유승민의 목소리가 정점을 쳤다.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저는 매일 이 질문을 저 자신에게 던진다. 저는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고 싶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야당 의석에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당청의 반응은 싸늘했다. 당 대표는 "당의 방침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청와대 역시 "개인 소신"이라고 폄하했다. 이렇게 시작된 유승민과 대통령의 갈등은 사상 초유의 여당 원내대표 '찍어내기'로 치달았다. 하지만 쫓겨나면서도 그는 오히려 당당히 말했다.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제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 이 말이 '매일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 파장은 크고 깊었다. 지난해 말 촛불이 불타오를 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란 구호가 광장을 덮었다.

앞서 지난해 총선 때 대통령에게 '배신자'로 찍힌 유승민은 결국 공천에서 탈락했다. 탈당 기자회견에서도 자신의 정치 키워드를 다시 언급했다.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건, 저의 오랜 질문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였다." 이어 정치하는 이유를 다시 되뇌었다.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였다. 유승민의 도전은 파란을 일으켰다. '보수 안방' 대구에서 그를 포함, 무소속 3명에 민주당 1명이 당선됐다. 친정 새누리당은 과반 의석은커녕 원내 2당 신세로 추락했다.

따지고 보면, 조기 대선 국면에서 유승민이 자신의 정치 키워드를 제목으로 단 에세이를 낸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보수 개혁'의 오랜 꿈을 위한 도전장인 셈이다. "국민 여러분! 저를 정치에 뛰어들게 한 것은 20년 전의 IMF 위기였다. '문제는 경제인데 결국 해답은 정치에 있다.' 이제 저의 정치적 소명을 다하고자 한다."(대선 출마선언문)

그러나 유승민의 '소명으로서의 정치'는 지금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바른정당은 지난 24일 밤 긴급 의원총회를 열었다. 갑론을박 끝에 나온 결론은 '좌파 패권세력 집권 저지를 위한 3자 단일화'. 한마디로 유승민의 후보직 중도사퇴였다. 당연히 그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치란 열정과 균형적 판단,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구멍 뚫는 작업이다. 만약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아마 가능한 것마저도 이루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막스 베버가 100여 년 전 독일 청년들에게 질타했던 말이 떠오르는 이유가 뭘까. '참보수'를 소명으로 내건 유승민의 도전이 한국 정치의 미래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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