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열남(熱南)⑥-제2회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우수상

하나둘 거품을 물고 기절해버리는 낙오자, 행군을 더디게 했다

투이호아 비행장
투이호아 비행장
대규모 작전 투입
대규모 작전 투입
동굴 수색
동굴 수색

▶성마작전

성마 72-1호 작전으로 명명된, 나로서는 파월 이래 네 번째 참가하는 가장 대규모의 작전이 보름의 기간으로 시작되었다.

장소는 28연대가 위치한 투이호아 서북방 몇㎞ 지점이라던가. 작년 초 71-1호 작전에서 우리 10중대가 거의 전멸하다시피 피해를 입었다는 '망망 수이까이' 계곡이라고 했다. 일명 킬러계곡, 죽음의 계곡으로 불리는 곳이었다.

작년에 우리가 큰 피해를 본 데는 이유가 있었다고 했다. 초장부터 오르기 시작한 풍성한 전과에 모두가 기고만장해 적 무서운 줄 모르고 설치기만 하다가 작전이 종료되는 마지막 날 적의 야간 기습을 받아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절반의 인원도 제 발로 걸어 들어오지 못한 막대한 피해로 중대장이 보직 해임을 당한 계곡이라, 출발 전부터 모든 면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D데이.

우리를 실어다 줄 헬기는 삼십여 대, 그리고 커다란 대형 시누크가 네 대, 우리의 랜딩 지점을 사전에 폭격으로 평정해 줄 무장 헬기 건십이 또 넉 대였다. 약 사십여 대의 헬기가 모두 날개를 펴고 폭음을 토하기 시작하면 이것은 굉장한 장관이 된다. 헬기들이 내뿜는 강력한 엔진 폭음과 그 속에서 쏟아져 나온 뜨거운 열기는 아지랑이가 되어 바닷물이 출렁이는 것처럼 보였다.

햇살이 높이 오르고 아홉 시가 가까워서야 비로소 작전 투입인 랜딩이 시작되었다. 오전 10시 20분. 드디어 우리 조원 6명과 함께 탑승, 순식간에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창문도 없어 창밖으로 내뻗은 두 발을 바람이 강하게 치고 지나갔다. 의자에 앉듯 엉덩이만 헬기 바닥에 걸친 채 발은 밖으로 내어 늘어뜨리고 있지만 안팎으로 작용하는 원심력과 구심력 때문인지, 헬기가 방향을 전환하려 회전해 돌 때는 굉장한 각도로 기체가 기울어지지만 미끄러져 나가거나 추락하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어느덧 작전도 이제 종반으로 접어든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우리 중대와는 달리 우리 연대 규모 안에서도 타 중대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다시 다음 날.

대대 본부로부터 우리의 진로를 하루 앞당겨야 한다는 명령을 받고 부랴부랴 길을 서둘렀다. 이날의 행군로는 황량한 초원지대를 지났다. 횡단하는 진도와 속도가 무척이나 빨랐다. 하루 앞서 출발한 12중대와 초원에서 합류한 뒤 이들이 선봉에 서서 힘차게 선두 병력을 뽑아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후로 접어들자 우리 대대 뒤를 2대대의 6중대, 8중대까지도 따라붙어 나란히 한 줄로 뚫고 있는 행군의 길이는 가히 10여㎞에 달하고 있었다. 초원지대며 진로가 양호하기 때문에 우리의 노출이 그만큼 위험 부담이 된다. 그래서 빠른 병력 이동을 위해 급한 행군이 필요했다. 정글 속은 하루 1㎞를 뚫기도 어렵지만 이날은 초원지대라 하루에 12㎞를 주파해야 했다.

갈수록 뜨거워지는 태양열은 무섭게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천신만고 끝에 휴식 자리까지 가면 개울로 기어가듯 내려가 얼굴을 물속에 박고 조금 정신을 추스르기도 하지만 다시 출발할 땐 제대로 일어서기조차 어려웠다. 그만큼 기력이 소진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덧 하나둘 낙오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낙오라는 불명예를 당하지 않으려면 이를 악물고 버텨야만 했다. 휘청휘청 앞사람을 뒤따라 걷다가, 허옇게 눈을 까뒤집고 입에 거품을 뿜으며 까무러져 기절해버리는 낙오자는 전체 진로를 더디게 했다.

자연과의 악전고투,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투이호아계곡 입구에서 연대장과 대대장이 많은 차량을 이끈 본대의 마중을 받은 것은 오후 다섯 시 경이었다. 처음 랜딩을 시도했던 비행장까지 차를 타고 달리는 동안 얼굴에 부딪히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깊은 심호흡을 할 수 있었다.

'택'의 경계요원과 재보급요원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으며 힘겹고 고달팠던 이번 작전을 무사히 종료했다. 밤에는 전 부대원 모두를 모은 뒤 대대장의 격려와 훈시가 있었다.

"타 대대에 비해서는 전체 전과가 적은 것이 상부에 미안한 일이지만, 그래도 가장 피해를 덜 입은 것은 고국에서 기원을 보내고 있는 여러분의 부모 형제와 더불어 기뻐해야 할 일이다. 우리 9중대 전우의 전사는 우리 모두의 희생을 대신한 것이다. 그 넋을 추모하고 우리 모두 그의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조의금을 갹출하자."

대대장의 그 말씀에 이어 밝힌 전투 상황은 아군 전사자 7명. 적 사살 281명, 포로 귀순 5명, 적 장비로는 공용화기 7문과 84정의 소화기를 노획하는 등 대단한 전과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재보급요원 이 병장의 말을 빌리면 한 대의 의료 헬기가 피해 지역에서 돌아 나올 때마다 부상병과 함께 7, 8구의 시체들을 쏟아놓았다고 했다. 그러면 재보급요원 모두가 행여 내 중대원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부리나케 뛰어가 얼굴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래도 모르는 얼굴이면 그 경황 중에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없이 되돌아서기를 몇 번이었는지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자기 눈으로 본 아군 전사자 시신만 20구가 넘는다고 했다.

발표된 우리의 전과 뒤에는 여러 가지를 감안한 말하지 못할 많은 피해가 숨어 있는 것 같았다. 특히 전투가 치열했던 곳은 28연대 구역으로, 아군의 피해도 엄청나게 많았고 30연대도 한 중대가 완전히 부서졌다는 소문도 있었다.

숫자상으로 나타난 이번 작전의 총전과는 우리 백마부대의 3개 전투연대가 모두 합쳐 적 사살 637명, 소화기 노획 206정, 포로 9명, 귀순자 11명, 공용화기 노획 16점으로, 전과 자체는 단일 전투로는 파월 후 가장 큰 전과를 거두었다고 했다. 월맹 정규군 K13 대대와 푸엔성 베트콩 본부 위원회가 위치한 적 236기지를 완전히 점령, 섬멸한 것이다.

※매일시니어문학상은

전국 신문사 최초로 매일신문이 제정해 운영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문학상 공모전입니다. 만 65세 이상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으며, 공모 부문은 논픽션, 시, 수필 등 3개 부문입니다. 대상 1명 500만원, 최우수상 3명 각 300만원, 우수상 15명 각 100만원 등 총상금 4천100만원입니다. 주제는 제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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