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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의 에세이 산책] 내 방 속에 숨겨둔 선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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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즈음 산속에서 혼자 산다. 흙과 돌을 쌓아 지은 집. 방 하나 부엌 하나. 내가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꼴로 밥 얻어먹으려고 다니는 공동체는 걸어서 30분쯤 떨어져 있는 곳에 있다. 길은 둘이다. 산 너머로 난 길 하나, 저수지를 끼고 내려가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길 하나. 자전거도 다닐 수 없는 산길이므로 걸어다닐 수밖에 없다. 겨울에도 땔감 걱정은 없다. 산에 죽은 나무들이 지천으로 널브러져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같이 불 안 때도 되는 여름철에야 더 말할 나위 없다. 마냥 마음 편하게 지내고 있다가 지난 한 달 동안 걱정이 쌓이고 있다. 가뭄 걱정이다. 이미 계곡물은 바짝 말랐고 저수지도 거의 바닥이 드러났다. 콩은 오래전에 묻었는데 움 돋을 엄두조차 못 내고, 모판에서 옮겨 심은 들깨는 타들어가고 있다. 그래도 어쩌나. 하늘이 하시는 일인데.

몸 씻을 생각을 접은 지는 보름이 넘는다. 가뭄이 오래 들어도 마르지 않아 저수지 아랫동네분들이 우물까지 마르면 물 길러 왔다는 '참샘' 물마저 말랐다. 계곡 바위틈에 더러 고여 있는 물을 주전자로 떠 와서 마시고, 이 닦고, 가끔 고양이 세수를 하는 게 고작이다.

내 오두막에서 산을 거슬러 오르면 '선녀탕'이 있다. 호젓하게 몸을 씻을 수 있는 곳이었는데 이제 그 물마저 말랐다. 선녀 이야기가 나왔으니 내 방 흙벽에 걸려 있는 사진 자랑을 좀 해야겠다. 선녀 두 분이 '몸뻬' 차림으로 손잡고 정겹게 웃고 있는 사진이다.(사진작가 이지 누님이 오래전에 보내준 것이다) 어쩌다 이 오두막에 손님이 오면 이렇게 너스레를 떤다.

"여러분은 선녀라고 하면 젊고 예쁜 여자를 머리에 떠올릴 텐데, 이분들도 선녀요. 이 마을 농사꾼들이 선녀탕에 멱 감으러 내려온 선녀들 옷을 감추어두고 아이들 네다섯 넘게 낳을 때까지 옷을 돌려주지 않아 농사꾼 아낙으로 늙은 선녀들이지. 이 주름진 얼굴에 가득한 해맑은 웃음을 봐요. 죄 없이 산 선녀들만 이렇게 웃을 수 있어."

그러고 보면 나는 선녀 할매 둘을 데리고 사는 팔자 좋은 신선(?) 할배인 셈이다. 혹시 옥황상제가 이 꼴 보기 싫어서 비를 안 주시는 것은 아닐까.

우리 마을에서 한평생 죄 없이 농사만 짓고 살던 할매들이 한 해가 멀다 하고 세상을 뜨고 있다. 올해는 양파를 거둘 사람 손이 없어서 우리 공동체 중학생들까지 일손을 거들어야 했다. 도시에서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서 허둥거리거나 '비정규직' '알바' 같은 낯선 이름의 일자리에 매달려 젊음을 헛되이 보내는 일손들이 붐비고 있는데, 일손 없는 시골에서는 묵혀둔 밭에 가뭄에도 끄떡없는 망초 떼만 하얗게 피어나다니. '식량주권' 없이는 '자립경제'도 '자주국방'도 물 건너간 일이라는데, 이런 세상을 얼마나 더 견뎌야 하는지, 언제까지 더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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