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2시쯤 경북 청도군 화양읍 고평리의 한 감 가공 농장. 작업장 스피커에서 힙합댄스 음악이 흘러나오자 포장대 앞 손놀림이 빨라졌다. 감말랭이를 담고 봉하고, 박스를 접어 테이프를 붙이는 공정이 끊이지 않았다. 직원 6명은 모두 외국인이었다.
이들은 필리핀 카빈티시(Cavinti)에서 선발돼 지난해 10월 청도에 들어온 계절근로자들이다. 현지에서 100명을 뽑는 모집에 800명이 몰려 8대1의 높은 경쟁률을 뚫었다. 청도군은 2023년 필리핀 카빈티시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를 도입한 뒤, 올해 투입 인원은 432명으로 늘었다. 첫해 84명에서 514% 증가한 '역대 최대' 규모다.
◆ '겨울에도 사람이 없다'…수확 타이밍을 지키는 손
청도는 감·복숭아 산지로 알려졌지만, 겨울 농가의 현금 흐름은 시설딸기와 한재미나리가 만든다. 문제는 '겨울에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일손 부족은 더 이상 봄·가을 농번기만의 사정이 아니다.
딸기는 붉은 빛이 80%쯤 올라왔을 때 따야 운송 중 상하지 않는다. 하루만 늦어도 값이 꺾인다는 말이 나온다. 꼭지를 잘못 잡으면 과육이 멍들고, 작은 상처 하나가 상품성을 가른다. 미나리도 시기를 놓치면 품질이 무너지고 납품 단가가 내려간다. 인력난이 곧 품질 하락, 농가 소득 감소로 이어지는 구조다.
이서면 서원리에서 5,500㎡(약 1천800평) 규모로 딸기를 재배하는 김종우(51)씨는 "필리핀 계절근로자들에게 10분 쉬라고 해도 계속 일만 한다"며 "성실하고 부지런한 데다 적막한 농가에 활력을 불어넣는다"고 했다.
◆ 필리핀서 월 30만원 받던 근로자, 청도에선 220만원
필리핀 카빈티시 근로자의 월평균 급여는 30만원대인 반면, 청도에 온 계절근로자들은 월 220만원을 받는다. 임금이 7배가량 높다 보니 신청자들이 몰렸다는 것이 청도군농업기술센터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지 선발은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신분 확인, 체력 테스트, 면접 등을 거쳐 성실하고 안정적으로 근무 가능한 근로자들을 뽑는다.
최종 선발된 근로자들은 한국에 오면 본인 명의로 통장 2개를 만든다. 급여에서 매월 160만원은 필리핀 은행 계좌로 송금된다. 남은 임금은 국내 계좌로 관리한다. 고향에 먼저 보내야 마음이 놓인다는 말을 현장에서 여러 번 들을 수 있었다. 청도군은 올해 계절근로자 유입으로 인건비를 약 7억원 이상 절감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무단이탈 '0명'
청도군이 내세우는 성과는 '무단이탈 0명'이다. 청도군은 현지 면접 선발제를 운영하고, 입국 후에도 통역 인력을 붙여 매월 정기 상담을 한다. 월 1회 이상 근로 현장을 점검하고, 마약검사비와 산재보험료도 지원한다.
노동 조건·임금 정산·주거 환경·안전 교육 같은 불만이 누적되면 이탈로 번지기 쉽다. 군은 필리핀 출신 유학생을 언어소통도우미로 채용해 농가와 근로자의 불일치를 중간에서 조정하고, 갈등이 커지기 전에 손을 댄다.
이 운영 성과를 바탕으로 청도군은 2년 연속 법무부 '외국인 계절근로 우수지자체'로 선정됐다. 손형미 청도군농업기술센터 소장은 "사람을 뽑는 것만큼 사람을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재방문 37%…'손발 맞는 사람'이 다시 온다
2024년 기준 청도군의 재방문 근로자는 89명으로 전체의 37%에 달했다. 2년 연속 재방문이 51명, 3년 연속 방문이 38명이다.
홍상선(56) 청도로컬푸드협동조합 대표는 "2023년 처음 고용해 보니 손발이 맞고 성실해서 3년 연속 고용했다"며 "재방문 근로자를 배정받으니 서로 스타일을 아니까 말하지 않아도 척척 맞아 고맙다"고 했다. "팀워크가 좋아 자기들끼리 인력배치와 공정설계를 의논하며 주인처럼 알아서 해준다"며 "이 친구들과 쭉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제도와 여건이 마련되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근로자들도'다시 오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같은 농가에서 일하는 필리핀에서 온 크리스탈 메이(38)씨는 "사장님이 잘 챙겨주고 편하게 대해줘 동료들과 함께 다시 오게 됐다"며 "내년에도 후년에도 한국에 올 수 있다면 청도군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페르난도(33)씨는 "처음엔 쉽지 않았는데 손에 익으니 할 만하다"며 "사장님이 불러주시면 다시 청도에 오고 싶다"고 말했다.
미나리를 재배하는 한 농장주는 "계절근로자가 없었으면 인건비 상승 등으로 딸기와 미나리 가격이 폭등했을 것"이라며 "외국인이 있어 농사 짓고 산다"고 했다. 저출생·고령화로 지역 생산 인력이 줄어드는 현실에서 외국인 계절근로자는 농업 현장의 '마지막 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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